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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개어진 옷

by 윤선

가끔 밤에 아빠가 늦으시는 날이면

동생과 나는 잠을 참아가며 어디선가 얻은 전지를

반으로 접고 마주 보고 엎드려 그림을 그리며

아빠를 기다리곤 했다.


시계 초침 소리가 어지나 크게 들리는지

시계 초침 소리가 크게 들릴수록 시간은 더딘 듯했다.

작은 기척에도 '아빤가?'하고 잠시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귀를 기울이며 그렇게 아빠를 기다렸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을 거다.

그렇게 늘 아빠마저 사라질까 봐,

어린 마음에도 말 못 할 불안을 안고 살았다.

누구보다 의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넘기곤 했던 나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조용한 저녁이었다.

아빠는 우리를 마주 앉혀놓고 말했다.

“1~2년만 고아원에 가 있으면 아빠가 꼭 다시 데리러 갈게."


아빠의 그 말은 담담하고 조용했지만

내 마음 안에서는 비명이었다.

그리고 곁을 보니,

아빠는 이미 굳어진 결심처럼 우리의 옷들을 곱게 개어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 옷들을 본 순간 나는 알아버렸다.

이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곤 동시에 아빠에게 애원했다.

아빠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아빠 제발 고아원에는 보내지 말아 주세요…”

"아빠 말도 잘 들을게요."

평소엔 아빠에게 반말을 하던 내가 그날만큼은 존댓말을 썼다. 사실 더 말을 잘 들을 수도 없었다.

그만큼 간절했고, 그만큼 무서웠다.


내 옆에 있던 동생도 내가 비는 걸 보고 따라 울며

같이 빌었다.

더는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두 아이가 눈물로 애원하던 장면만 선명하다.


돌이켜보면, 그날만큼은 내가 아빠보다 나를 먼저 생각했던 것 같다.

늘 아빠가 힘드실까 봐, 아빠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던 나였는데, 그날만큼은 그게 안 됐다.

그냥, 무서웠다.

아빠를 다시는 못 볼까 봐.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설령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아빠는 반드시 우리를 다시 찾으러 왔을 거라는 걸 확신한다.

나는 그 믿음을 품고 있다.


그날은, 정말 아무 잘못도 없이 세상에서 제일 간절한 마음으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본 날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옷을 곱게 개어두던 아빠의 마음도

내 마음만큼이나 무너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날의 나는 아빠를 붙잡느라 울었지만,

지금의 나는 아빠가 얼마나 벼랑 끝에 서 있었는지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아마 아빠도, 우리를 보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 거다.

그저 버틸 수 있는 방법이 그거 하나뿐이었던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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