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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신문배달

기꺼이 행복한 사람

by 윤선


“해 뜰 때가 제일 추운 거야.”


신문을 다 돌리고 돌아오는 길, 아빠가 내게 알려주신 말이다. 새벽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도 모르고 스쿠터 앞자리에 앉아 신나 있던 나였다.


나는 아홉 살에 아빠를 따라 신문배달을 했다.

아빠가 시키신 건 아니었다. 낮에는 우리를 챙기고,

밤에는 포장마차와 신문배달을 하시느라 하루 두 시간 눈 붙이는 게 전부였던 아빠셨다.

매일 새벽 세 시 반이면 조용히 나갈 준비를 하셨고,

나는 잠귀가 밝아 그 소리에 늘 깼다.


어느 날, 문득 아빠를 따라가고 싶어졌다.

“아빠, 나도 따라가면 안 돼?”

우리 아빠는 원래 안 된다는 말을 잘 안 하시는 분이다. 새벽이라 춥고 고될 걸 아셨기에 굳이 데려가고 싶지 않으셨을 테지만, 같이 가보자고 하셨다.


동생이 자고 있는 식당문을 잠가두고,

나는 아빠의 품 앞에 올라탔다.

스쿠터 앞자리에 앉아 적막한 새벽바람을 가르며 아빠랑 둘이 달리는 게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아빠를 도울 수 있어서 좋았고,

어쩌면 아빠와 있는 그 시간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아빠는 빌라촌 담당이었고, 내 손에 신문을 쥐여주시며

“자, 201호. 사람들 자니까 조용히 놓고 와야 돼."

하고 일러주셨다.


나는 정말 조용하고 재빠르게 신문을 놓고, 아빠보다 먼저 스쿠터 앞으로 돌아오는 게 또 그렇게 좋았다.

"내가 아빠보다 빨랐지?"

"그래 잘했어!"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져 하루가 시작될 무렵,

아빠와 나의 신문배달은 끝이 났다.


몇 달을 그렇게 새벽마다 아빠를 따라다녔다. 아빠는 신문배달을 마치고 시장에 가셔서 장사 준비를 하셨고, 나는 집에 돌아와 동생 밥을 먹이고 태권도학원에 데려다주고 학교에 갔다. 청록색 스쿠터를 타고 달리던 그 새벽, 그때 본 하늘과 거리의 적막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시절이 어쩌면 힘든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르지만, 내게 남은 건 신기하게도 즐거운 기억뿐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아빠가 그렇게 만들어주신 거란 걸.


아빠는 그렇게 고단하게 살아도 단 한 번도 “돈 없다”, “가난하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런 생각이 들 틈도 없이, 주말이면 과학관에, 엑스포 전시에, 개울가 캠핑에, 우리 손을 잡고 다녔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게, 세상은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고 몸소 보여주셨다.


그렇게 자란 나와 동생은 꽤 긍정적인 어른이 되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힘든 상황도 기꺼이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아빠가 우리에게 물려주신 가장 크고 값진 재산이다.


그리고 가끔, 힘든 순간마다 문득 떠오르는 말.

“해 뜰 때가 제일 추운 거야.”

그 말이 이제는 나에게, 견디고 나면 반드시 따뜻해지는 시간이 온다는 뜻처럼 들린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꺼이 행복할 수 있는 사람.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내 정체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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