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으면 삶이 가벼워지는 줄 알았다.
마음만 먹으면 해야 할 일들을 줄일 수 있고
내가 챙겨야 할 사람들도 하나둘
내 손을 놓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내 품 안엔 더 많은 것들이 들어왔다.
가볍게 놓을 수 없는 것들.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 내 노견, 그리고 부부라는 관계.
부모님은 어느새 자식처럼 느껴진다.
예전엔 든든히 내 앞을 막아주던 사람들이
조금씩 작아지고,
이제는 내가 돌봐줘야 하고 신경 써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결혼했더니 심지어 부모는 늘어났다.
내 부모, 그리고 남편의 부모.
챙겨야 할 마음이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내 강아지도 그렇다.
나이가 든 강아지는 아픈 곳이 늘고,
내가 더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들이 쌓인다.
그리고 부부라는 관계.
사랑한다고 모든 것이 저절로 되고
쉽기만 한 건 아니다.
내가 지켜줘야 할 때가 있고,
내가 상대에게 기대야 할 때도 있다.
서로의 무게를 나눠 들고 가야 하는 사이다.
세상은 자꾸 가벼워지기를 권한다.
짐을 덜고, 마음을 비우고, 관계를 단순하게 하라고.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 삶이 가벼워질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는 걸.
내가 내려놓을 때마다 남는 건 자유가 아니라
허전함 뿐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차라리 무거움을 껴안기로 했다.
책임의 무게, 사랑의 무게, 돌봄의 무게.
내가 껴안고 싶어서 껴안은 모든 것들.
누구는 묻는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네가 짊어진 것들이 너무 많지 않으냐고.
좀 내려놓으라고,
나는 그게 나라고 대답한다.
대신 조용히 품 안의 것들을 다독인다.
그 무거운 것들은 껴안은 내가 가장 나 답다는 걸 안다.
그 무게가 있어야 내가 비로소 내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걸 나 자신은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겁다.
하지만 그 무거움은 내가 선택한 것이다.
부모님의 시간, 노견의 노쇠함, 그리고 부부라는 책임.
누구도 내게 억지로 안긴 적 없다.
나는 그 무게를 내 의지로 껴안았다.
그리고 그래서 자유롭다.
누군가 내려놓으라 해도,
내가 선택한 것이라면 그것이 곧 나의 자유다.
무겁게 껴안고, 그 무게만큼 가벼워진다.
그렇게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