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왕이면 가볍게

by 윤선

책임이라는 것은 참 묘한 무게다.

누가 억지로 지워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것.

누군가는 그걸 무겁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담담히 짊어진다.

같은 책임인데도 어떤 사람에게는 버겁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일상의 일부가 된다.

그 차이는 무엇 일지에 대해 나는 종종 생각한다.


결국은 감정의 문제 아닐까 싶다.

책임 자체가 무거운 게 아니라, 그 책임에 붙어오는 감정들. 억울함, 서운함, 기대, 불안 같은 것들이 무게를 더하는 것.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을 때의 서운함,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기대와 다를 때의 실망, 남들은 쉽게 넘기는 것 같은데 나만 무거운 짐을 든 것 같은 억울함.

그런 감정들이 하나둘 쌓이면, 책임은 어느새 짐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책임을 무겁게 지고 싶지 않을 때마다 마음을 점검한다.

일희일비하지 말자.

내가 해낸 것에 너무 들뜨지도, 내 마음 알아주지 않는다고 너무 실망하지도 말자.

잘해도 담담히, 힘들어도 묵묵히.

내가 선택한 책임은 내 몫이니까, 굳이 감정의 파고를 얹어 무겁게 만들 필요는 없다.


책임이라는 건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다.

누가 하든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내가 하기로 선택했기에 내 앞에 놓인 일.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내고, 오늘 하루도 그렇게 지나가게 두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 ‘왜 나만 해야 해?’ 같은 마음을 얹으면,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누가 알아봐 주겠지’라는 기대가 따라오면, 돌아오는 반응에 따라 실망과 허탈이 함께 따라온다.

내가 감정의 키를 쥐고 있지 않으면, 책임은 금세 짓누르기 시작한다.


나는 그게 싫었다.

책임을 책임 이상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았다.

좋은 날에도 더 들뜨지 않고, 좋지 않은 날에도 너무 가라앉지 않기로.

‘이것도 지나갈 일’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내 기분에 따라 책임의 무게를 바꾸지 않기로.


예를 들면, 어떤 날엔 친정부모님 시부모님이 부탁하시는 일에 직장일, 강아지를 돌보는 일까지 순식간에 덮쳐 머리가 아프고 짜증이 솟구치는 날도 있다.

그렇게 가끔은 “나도 좀 돌봐줬으면” 싶은 순간이 오지만, 그 마음에도 너무 오래 머물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이왕 하는 거 잘해보자.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하자.

억지로 하면 고되고, 투덜대면 더 지치니까.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 마음이 먼저 편해야 한다.


책임은 나를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들고 가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내가 선택했고, 내가 들 수 있는 만큼 들고, 필요하면 잠시 내려놓고, 다시 들고 가는 것.

마음만 단단하면, 책임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


어쩌면 무거운 게 아니라, 내가 감정에 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마음은 단단히, 감정은 가볍게.

그리고 이왕 하는 거,

내가 선택한 삶을, 잘 살아보자. 즐겁게 살아보자.


keyword
이전 16화다시 껴안을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