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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껴안을 사랑

by 윤선

지금 함께하는 강아지들을 보내고 나면,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오래도록 마음을 다잡아왔다.

그건 너무도 막연한 슬픔 때문이었다.

언젠가 반드시 이별하게 될 텐데,

그 상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할수록 더 아프게 될 테니까.

그래서 다짐했다.

이제는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 다짐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처음엔 두부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와의 시간은 어떤 사랑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아이를 품는 건 두부를 잊는 일처럼 느껴졌고,

그런 선택은 두부에게 미안한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래도록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두부를 떠나보낸 바로 다음 날,

그 조용한 다짐이 흔들렸다.


정확히 말하면, 내 안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바뀌었다.

두부와의 시간, 그 아이가 내게 남기고 간 감정들이

마음속 어디에선가 새로운 생각을 틔우고 있었다.


‘또 한 마리쯤은, 두부처럼 아픈 일을 겪은 아이 하나쯤은 내가 사랑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사랑은 하나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그 사랑이 또 다른 존재를 향해 흐르기도 한다는 걸.


그건 두부를 잊는 일이 아니었다.

두부에게서 배운 사랑을 또 다른 아이에게 건네고 싶어진 것이었다.


내 마음은 분명했다.

그저 귀여운 모습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아이에게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었다.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에게

기꺼이 책임져주겠다는 믿음을 안겨주고 싶었다.


두부는 파양을 여러 번 당한 아이였다.

사람을 쉽게 믿지 않았고, 손길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나는 기다렸고,

두부는 결국 내게 곁을 허락해줬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 아이가 보여준 변화는 내게 큰 울림이었다.

사랑은 결국, 기다리는 일이라는 것.

믿음은 선택이 아니라 함께 쌓아가는 시간이라는 것.

주고받는 사랑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도 알게 됐다.


두부는 떠났지만,

그 아이가 보여준 사랑은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을 그냥 품고만 있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지금 남아있는 아이도 떠나고 나면

내 나이 오십 즈음엔 꼭 한 아이의 보호자가 되겠다고.


돌봄이란 단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그 생의 끝을 함께 걸어가는 일이라는 걸,

두부가 내게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어떤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가볍게 내는 결심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함께 늙어가겠다는 마음이다.


두부와 주고받으며 쌓인 사랑은

내 안에 고요하게 남아 있다.

언젠가 그 사랑을 또 다른 상처 입은 아이의 마음을 보듬는 데 쓸 것이다.


그 아이가 다시는 외롭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지는 보호자가 되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나는 안다.

사랑은 줄수록 줄 게 더 많아지고,

돌아올 땐 더 크고, 더 깊어지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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