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굳이 아픈 이야기를 이제야 꺼내는 이유는 이제는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인 거 같아서 또 어떤 식으로든 이별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용기를 내 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아픔을 겪으신 분이 계시다면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2012년 어느 초가을 늦은 저녁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약국에서 나오는 떨리는 내 손에는 임신테스트기가 있었다.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막상 결혼이라는 걸 하고 나니 아이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매월 비슷한 시기에 난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그리고 그날이 세 번째였던 거 같다. 두줄... 흐릿하긴 했지만 두줄이었다.
다음날로 난 제법 큰 산부인과를 찾았다. 토요일이라 산모들이 많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내 순서를 기다렸다. 문진을 하며 임신 축하 인사도 받았다. 그리고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선생님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난소에 물혹이 커서 아기가 아직 잘 안 보인다는 거다. 아직은 6주이니 다음에 다시 한번 보자고 했다. 불안한 마음에 아이는 괜찮은 거냐고, 그럼 제가 임신이 맞는 거냐고 재차 묻자 임신은 맞다고 하셨다.
기쁜 소식을 모든 가족들이게 알렸고, 모두들 함께 눈물까지 흘려가며 축하해 주셨다. 하지만 물혹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괜찮겠지... 다음에 가면 아이를 볼 수 있을 거야. 태명도 지었다. 너무 늦지 않게 똘똘하게 와 줘서 고맙다고 '똘이'라 지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아무도 태몽을 꾸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온 집안 식구들 태몽을 모두 꿔주셨던 분인데 엄마도 달리 말씀이 없으셨고, 나도 태몽 비슷한 것을 꾸긴 했는데 이상하게 마지막엔 분명하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그게 태몽이라 여기며 안심했다. 그래 태몽도 꿨잖아. 괜찮겠지 하면서...
그렇게 불안하지만 행복한 2주를 보내고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날을 8년이 지난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오늘은 아이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물혹은 괜찮을까 하는 걱정으로 온몸이 몸살난 것처럼 아프다. 그래도 임신으로 인한 것이라 여겼다. 친정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나를 임신하시고 10달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버티셨다고 한다. 그러니 나도 엄마 닮아 그런가 보다 치부했다. 그런데 검사를 하시는 선생님의 표정이 별로 안 좋다. 물혹이 더 커졌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아이가 자랄 수가 없다고, 지금쯤이면 아기가 보여야 하는데 물혹 때문에 보이질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번엔 포기하고 다음에 건강한 아이를 갖자 하시면서 상담 선생님을 만나라 하셨다. 아무 표정이 없는 내 모습이 더 안타까우셨는지 자신도 물혹 때문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다음에 건강한 아이 낳아서 잘 크고 있다 하셨다며 날 위로해 주셨지만 이미 내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질 않는다. 내가 왜 여기에 이러고 있지? 뭐가 잘못된 거지? 분명히 지난번엔 괜찮다고 했었는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래서 수술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속으로는 이런 실력 없고 엉터리 병원엔 다시는 안 온다고 욕하면서 나왔다.
병원을 나와 수업을 하는데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질 않고 자꾸 눈물을 나는걸 꾹꾹 참았다. 그때가 중간고사 시험기간이라 그나마 문제풀이만 하면 되는 거라 천만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학생 앞에서 병원에서부터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왈칵 쏟았을 것이다. 어찌어찌 수업을 끝내고 차에 타자마자 대성통곡을 했다. 정말 모든 게 다 미웠다.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억울했고,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이 생기나 원망스럽기도 했다. 어떻게 하지? 나라도 정신 차려서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물어보지만 물혹 크기를 들으신 선생님들 모두가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병원에 전화를 했다.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꼭 빠른 시간으로 예약을 하고 싶다고 하니 같은 여자 입장으로 안타까우셨는지 정말 기적적으로 월요일 오전 진료 예약을 잡아주셨다. 하지만 산과가 아닌 부인과 선생님을 뵙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부인과 선생님을 추천해 주셨다.
혹시나 여기선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죄 없는 옷자락만 연신 만지작거리는데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선생님을 뵐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초음파 영상을 확인하시더니 아기는 주수에 맞게 잘 크고 있고, 물혹이 크긴 하지만 이 정도 가지고 임신 포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 하시며, 물혹은 아직은 임신 초기이니 임신 3개월이 지나면 제거하기로 하고, 다음부터는 산과 선생님께 진료를 받으라고 하셨다.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지옥문까지 갔던 내게 선생님은 이 세상 그 어떤 신보다도 높고 거룩한 존재셨다. 나와 내 아기를 지켜주신 소중한 분이셨다. 종합병원이라 1시간을 넘게 대기해야 했던 불편함도 이내 사라졌다.
그렇게 난 임신 2개월 만에 태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운전할 때도 조심조심, 예쁜 것, 좋은 것만 생각하고, 학생들의 중간고사 성적이 예상보다 못 나와도 '다음에 잘하자'며 다독여줬다. 그리고 다음 해 봄쯤 태어날 똘이를 맞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예약 날. 그러니까 딱 한 달이 지나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를 보는데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다. 여러 번 검사를 하더니 담당 선생님께 설명 들으시라는 무서운 한마디만 남기고 검사를 마치셨다. 뭐지? 무슨 일이지? 기다리는 내내 불안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렇게 고대했던 산과 선생님과의 진료시간에 난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기가 한 달 동안 하나도 자라지 않았다고, 본인에게 수술을 받으셔도 되고 아니면 지난번 진료받았던 선생님께 수술을 받아도 된다며 나보고 선택을 하라 하셨다.
그래서 나에게 신과도 같은 존재인 지난번 김대연 교수님께 하겠다고 했다. 혹시나 교수님이면 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한번 뵙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엔 교수님도 내가 기다렸던 듣고 싶었던 말씀을 해주시지 못하셨다. 이번엔 안타깝지만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물혹을 깨끗하게 제거하고 다음에 임신할 때는 지금과 같은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난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 앞에서, 밖에는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고 있을 다음 환자를 전혀 배려하지 못하고 지난번 차에서 혼자 울었던 것보다 더 크게 더 오래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나와 똘이의 짧은 인연이 끝이 났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못하고 집에서 마음껏 말썽을 부리지만 더없이 소중한 짱구가 우리에게 와주어 모두들 이젠 똘이를 잊은 듯하고 짱구는 똘이의 존재조차 모르지만, 인사도 못하고 울면서 허망하게 떠나보내야 했던 마음 한편에 묻어두었던 아픔인 똘이와 이젠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
똘이야! 엄마야.
네가 엄마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엄마가 널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엄마가 좀 더 똑똑했더라면 우리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그땐 엄마가 너무 몰랐어.
지금쯤이면 똘이가 다른 엄마를 만나 엄마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만, 엄마는 아직도 널 기억해.
널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만약에 우리가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우리 헤어지지 말자.
그때는 짱구랑 같이 만나서 서로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하며 사랑하자.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살자.
엄마한테 왔는데 널 한 번이라도 만져보고 안아주지 못해서, 너에게 해준 게 없어서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