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애 Oct 22. 2020

괜찮아. 선수할 것도 아닌데 뭐.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위로

어렸을 적 난 운동을 무지 못했다. 체육선생님이 포기할 정도였다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내가 키가 큰 편이라 대부분의 체육선생님들이 운동을 잘할 거라 기대하셨지만 난 일관되게 실망시켜 드렸다. 1년 중 체육대회가 가장 싫었고, 그와 관련된 웃픈 일화도 하나 있다. 체육대회의 꽃인 달리기 종목에서 내 차례가 되어 뛰는 것을 보고 불쌍한 우리 엄마가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응원을 하셨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분이 엄마에게 맨 앞에서 달리는 아이가 딸이냐고 묻자 우리 엄마 왈

아니요. 뒤에서 두 번째로 들어오는 애가 우리 딸이에요.

꼴등 아닌 게 어디야. 우리 엄마도 나도 그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운동신경이 없어 포기했지만 그래도 남자가 운동을 즐기면서 흘리는 땀이 좋다. 다시 말해 운동을 썩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여럿이 어울려 즐길 줄 아는 남자가 멋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짱구의 운동신경이 시원챦다.  

1. 축구 편


짱구네 태권도장에서는 쉬는 시간에 가끔 형들이랑 축구를 한다. 그런데 매번 포지션이 골키퍼다.

짱구는 공 잘 잡아?
아니. 잡을 때도 있는데 못 막을 때가 더 많아.


아무래도 형들이랑 축구를 하다 보니 어린 짱구가 자꾸 밀려나나 보다. 그러다 며칠 후 짱구 친구들이랑 공원에서 우연히 공놀이를 하게 되었는데 연신 헛발질을 하더니 약이 잔뜩 오른 짱구가 씩씩거리며 축구 배우겠다 선언을 한다.

한 달을 배우고, 정확히 말하자면 일주일에 한 번씩이니 4번을 배우고 짱구와 축구공을 들고 공원에 가서 축구를 해봤다. 나 또한 "뭉쳐야 찬다"에 안정환 감독이 선수들에게 코칭하는 것을 열심히 봐왔던 터라 제법 축구 용어를 섞어가며 열심히 훈련을 시켰고, 짱구도 헛발질의 횟수도 줄고 공이 꽤 멀리 나가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감격하여 다음 짱구의 축구 수업이 있는 날 코치님께 살며시 여쭤본다. 그러자 코치 선생님 왈


그래도 짱구가 열심히 설명하는 것도 듣고,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고, 축구 배우는 것을 재미있어해요. 


그렇다. 짱구에겐 축구 DNA는 없었다.

    

2. 자전거 편


정확히 짱구가 6살 어린이날 선물로 자전거를 사줬다. 아무리 보조바퀴가 있다지만 과연 잘 탈까 걱정을 했는데 속도가 잘 안 나서 그렇지 꽤나 잘 탄다. 물론 몇 번 넘어지기도 했지만 울지 않고 일어나서 다시 타는 걸 보면 기특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물론 코로나 19 때문에 그동안 밖에 못 나가니 자전거 타는 일도 없었지만 2년이 지난 올해까지도 보조바퀴도 못 떼고 자전거 속도가 영 안 난다. 또 겁이 많은 짱구는 얕은 오르막 길에도 자전거를 멈춰 끌고 올라간다. 아무리 페달을 계속 밟으면 올라갈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고급 단계고 자신은 아직 중급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거다. 


그러다 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하면서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놀기로 한 모양이다. 자전거를 끌고 약속 장소로 가면서 갑자기 걱정이 되었는지 묻는다.

엄마! 친구들 중에 나처럼 보조바퀴 있는 아이도 있겠지?
글쎄. 모르지?

약속 장소까지 가는 동안 계속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더니 도착해서 한 친구의 자전거에 보조바퀴가 있는 것을 확인하자 갑자기 화색이 돈다. 친구들이랑 어울려 자전거를 타는데 몇몇 아이들은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도 잘하고 꽤 잘 탄다.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가지만 자전거가 작은 짱구는 자기만의 코스를 돌며 만족해야 했다. 


돌아오는 길 오늘의 패인을 나름 분석한 짱구가 말한다.

엄마. 내 자전거가 너무 작아. 자전거가 작으니 바퀴도 작아서 빨리 달릴 수가 없어.
큰 자전거 짱구가 보조바퀴 없이 탈 수 있어?
일단 큰 자전거에 보조바퀴를 달고 연습한 다음에 빼야겠어. 보조바퀴가 있으니까 곡선을 빨리 돌 수가 없어.


결국 자전거 사달라는 거네. 쩝. 그래 이번 주말에 자전거 사러 가자. 짱구에게 작아서 바꿔야 하긴 했다.


3. 인라인스케이트 편


짱구네 태권도에서 2년 개근 상품이 인라인스케이트인 모양이다. 아직 인라인스케이트를 본 적 조차 없는 짱구가 고민을 한다.

엄마 인라인스케이트가 뭐야?
인라인스케이트? 신발에 바퀴 달린 거야.
그거 재미있어?
재미있지.
그럼 태권도에서 선물로 주신다는데 받아올까?
그럼 당연히 받아와야지. 
인라인스케이트 타면 얼마나 빨라?
글쎄? 걷는 것보단 빠르지.

내 경우엔 그랬다. 한창 인라인스케이팅 붐이 일었을 때가 있었다. 나도 취미로 한 가지는 배워야겠다 싶어 동호회 가입도 하고 인라인 장비도 세트로 구입을 해서 배웠는데 결국 나만 한강 라이딩을 못했다. 물론 속도도 안 나지만 분명 멈추는 방법을 알지만 전혀 써먹지 못하고 그냥 주변에 있는 물건을 잡으며 넘어져 버리니 도저히 라이딩을 할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결국 동호회를 탈퇴하고 혼자서 연습하는데 내가 연습하는 모습을 본 친구가 한마디 한다.

야! 인라인 스케이트가 원래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거야?

하지만 짱구를 가르쳐줄 수는 있다. 왜? 누구보다 이론은 완벽하기 때문이다. 아자! 파이팅! 

 

오늘도 우린 서로를 다독이며 이야기한다.


괜찮아.  우리가 선수할 것도 아니잖아? 그치?

이전 08화 본캐와 부캐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