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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Jan 07. 2021

#정인아, 미안해

우린 왜 이렇게 미안한 게 많을까?

양부모의 학대와 방임으로 생후 16개월밖에 안 된 입양아(정인이)가 너무나도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차라리 정인이가 입양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밝게 웃으며 살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16개월 아기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두려웠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아이를 위해 신고를 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정인이를 더 고통스럽게  한 건 아닌지 후회가 된다'라는 어린이집 관계자의 말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이번 '정인이 사건'으로 인해 입양을 담당했던 홀트 아동복지회뿐만 아니라, 담당 경찰서, 치료 병원까지 청와대 청원뿐만 아니라 법원에 진정서가 접수되어 책임을 묻고 있는데 이 사건의 주범인 양모는 아직도 억울하다고 한다. 도대체 양모는 아이가 죽었는데 뭐가 그리도 억울할까?


물론 16개월 아이가 항상 사랑스럽지만은 않다. 내가 낳은 아이도 안 이쁠 때가 있는데, 친딸의 동성 자매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양모에게 16개월 아이가 사랑스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친딸의 놀이 대상, 들러리, 소품 정도로 생각했는데 먹여야 하고 입혀야 하고 재워야 하고 아프면 병원도 데려가야 하고 어린이집도 보내야 하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을 테다. 그래도... 그래도 사람이라면... 이건 정말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시작했고 그 뒤엔 #우리가 바꿀게!라는 말이 있다. 정인이에게 미안한 것도 사실이고 우리가 바꿔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바꿀 수 있을까? 정말 그런 확신이 있어서 고통으로 생을 마감한 아이에게 약속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가게 홍보에 굿즈까지 돈 버는 분들은 정말 미안하긴 한건가요?


지난 5일 한 업체가 SNS에 의류, 가방, 쿠션 등에 '#정인아 미안해' 글씨를 새겨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고,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자 챌린지에 동참하고자 시작했다는 상식 밖의 사과문을 올렸다. 또 가게의 홍보성 글에 관련 없는 '#정인아 미안해' 해시태그를 달아 조회수를 올린 경우도 있다. 

한숨만 나온다.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묻고 싶다. 정말 미안하긴 한건가요?


우리가 꼭 바꿀게! 우리가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나요?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입양가정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입양아'라는 주홍글씨가 세겨진채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입양가정뿐만은 아니다. 결손가정, 한부모가정 등 사회 곳곳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신애라 배우의 일화는 감사했고, 뭉클했다.


첫째는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지만 둘째는 입양아이기 때문에 놀림을 받지 않을까 많이 걱정됐다. 그래서 선생님께 '혹시 학교 가서 그림책 하나 읽어줘도 될까요?'라고 물어본 뒤 학교에 가서 책을 읽어줬다. 그때 아이들에게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다고 가르쳐주고 우리 예은이는 입양아라고 알려줬다. 그랬더니 '넌 참 특별하구나'라며 입양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내가 낳은 아이도 아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때 아이를 입양하는 부모의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주위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중요하다. 이것이 슬퍼하고 있는 우리가 가장 먼저 바꿀 수 있는 게 아닐까? 


우리의 아이들은 소중합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아동 학대 및 방임'이다. 많은 이들이 팬데믹으로 인해 힘들도 지쳐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 행위이다. 

나에게도 올해로 9살이 된 에너지 넘치는 장난꾸러기 짱구가 있다. 코로나 2.5단계로 학교는 3월까지 못 가고, 5인 이상 모임 금지이니 친구를 쉽게 만날 수도 없고, 날이 추우니 밖에 나갈 수도 없다. 그러니 그 에너지를 모두 집에서 하루 종일 나와 소모를 해야 한다. 독박 육아를 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질 것이다. 그런 짱구가 8살 처음 학교 공부를 시작했을 때 엄마의 특기란에 '화내기'라고 적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마음이 무너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며칠을 혼자 진정시키고 짱구를 불러서 물었다.

짱구야! 엄마가 짱구한테 화를 잘 내?
아니?
그런데 왜 엄마 특기가 '화내기'야?
짱구는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데 엄마가 화낼 때는 무섭거든.

미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나는 짱구를 정말 사랑하고 위해서 했던 말과 행동들이 짱구에게는 다르게 느껴졌구나 생각하니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나 막막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짱구와 함께 하나씩 규칙을 만들어갔다. 그랬더니 내 목소리 커짐의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루는 짱구가 나에게 묻는다.

엄마! 엄마는 왜 나 안 때려?
왜?
내 친구는 엄마가 맨날 때린데.
왜?
몰라. 그냥 때린데.

무슨 사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말만 듣고는 참 애매하다. 나라고 손이 올라가고 싶은 적이 없었겠나만은 체벌은 훈육이 아닌 거 같다. 그래서 아직은 기다리는 건데 짱구는 마냥 뿌듯해한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짱구에게 무조건 '안돼'라는 말을 안 해서 짱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래 내가 잘하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나쁘지 않다. 죄를 짓지도 않는다. 만약 아이들이 잘못을 했다면 그것은 어른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책임을, 어른들의 분풀이를, 삶의 고단함을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사랑받아야 할 존재다.


경찰청장이 사죄하고 그다음은 뭔가요?

이번 사건으로 뭇매를 맞은 곳은 경찰이다. 급기야 경찰청장이 공개사과를 했고, 해당 경찰서장은 대기발령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구내염으로 진단했던 의사에게 의사면허 박탈하라는 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왔고, 입양 담당 기관이었던 홀트 아동복지회에도 책임을 묻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가 변명거리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변명거리가 죄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억울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는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만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서에 아동학대 전담팀이 있지만 번번이 다른 팀에서 사건을 맡아 처리를 했고, 경찰서장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없었다. 

의사는 아이를 진단했지만 구내염 진단을 내리고 체중감소에 대해서는 별도 검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또 아동보호소 직원이 동행했음에도 아동학대 정황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의사는 모든 상황을 의심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모든 의사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아동보호소 직원은 단순히 병원의 진단서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홀트 아동복지회는 1차 의심 신고가 들어왔을 때 양부모를 만났지만 양부모의 말만 듣고 사건을 종결했다. 이 때문에 그 후 방문을 하려 했지만 양부모가 거부하면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방문했을 때 아이를 만나서 관찰 후 분리를 해야 할지 판단하지도 않고 양부모의 말만 듣고 종결한 아동복지회는 '규정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거리에 숨어 책임을 통감한다고만 한다.   


이런 암담한 현실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제2의 정인이는 제발 나오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회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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