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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Jan 18. 2021

1월 2주 차

개발하다 :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새로운 생각을 내어놓다.

 개발은 과학자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단어의 전유물, 다시 말해 말하는 그 모두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 입을 열고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상황에 따라, 지위에 따라, 시간에 따라 정해져 버린 말 혹은 금지된 단어들이 있다. 마치 과학자의 개발처럼, 신의 창조처럼, 결혼식의 축하처럼. 사실 입을 열면 어떤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개발자다.


 쓰고 뱉는 모든 말들은 나의 개발이지만 개발스러운 개발은 쉽지 않다. 개발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지금이나 매일 밤 끙끙거리며 한참을 빈 채로 놔두는 그 시간은 견디기 어렵지만 이겨내야 한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하는 싸움은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 개인은 내면에 의지가 있어 스스로와 끝없이 싸운다. 정작 엉뚱한 곳에서 (계속 앉아있게 하려고) 싸우고 있으니 막상 본격적인 전투에 쓸 힘이 없다. 결국 무개발로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개발자가 늘 개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개발은 하는 것이 아니라 하게 된 것이다. 꾸준함. 개발을 위한 노력으로 개발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언제 개발도상국을 벗어나게 된 것일까. 모두가 동의하는 뚜렷한 기준이 있으면 좋겠지만, 70억 명의 기준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5000만 명은 다를까. 할 수 있어도 안 할 것이다. 시간, 비용, 설득을 책임지는 자는 누구인가. 누구 입맛에 맞추겠는가. 기준 잡아 딱 말해주기보다는 애매하게 방치해 버리면 사실은 개발도상국 딱지를 떼기 위해  알아서 열심히 할 것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개발도상국이 어때서.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라의 개발보다 각자의 계발이 아닐까. 계발하면 개발은 따라올 테다.


 나의 계발은 홀로서기다. 홀로서기 위해 깨달아가는 것. 책임을 갖고, 인내를 품고, 노력을 쏟고. 그리고 개발한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여행을 하는, 즉 계발함으로 개발함.(이런 언어유희가 난 재밌다.)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요 근래 깨우쳤다. 집을 벗어나 이동을 할 때 스치는 풍경의 파노라마에서, 점묘법처럼 날 찌르는 수많은 생각들. 하나의 찌름은 하나의 생각이지만 가장 깊은 찌름이 날 깊게 휩싼다. 아, 그때마다 양손에 쥔 것은 없고, 생각이 빨라지는 반면 몸은 무거워진다. 무방비의 전라. 다다다. 그 생각들만 잘 개발시켜도 이 개발란에 쓸 내용은 알 낳는 닭처럼 금방일 것이다.


 힘겹게 가져온 작은 계발의 개발. ‘건물이 높은 이유는 감히 삶을 멀리 보지 못하게 하려는 있는 자의 욕망의 표출이다.’ 날 찌른 엉뚱한 생각. 파주도, 서울도, 그 높은 아파트와 빌딩에 있을 때 멀리 보지 못한다. 시야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당장의 삶에 급급하다. 집에서 바깥 풍경을 보거나 산에 올랐을 때, 또 낮은 건물이 함께하던 제천과 안동에 갔을 때, 비로소 멀리 보이면서 긴 호흡이 가능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기지개를 켠다. 여유를 갖고 저 멀리 바라본다. 이때 나의 미래의 찬란한 빛이 내 앞을 밝힌다. 드디어 지금부터 영원까지 바라보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깨우친 자의 한 마디. 높은 건물을 지은 있는 자는 우리 일반인을 노예로 만들려 했구나. 현대판 노예제의 부활, 이건 위헌이다!


과학자의 개발이 우리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해 준다면 나의 개발은 무엇을 위함일까. 탄탄한 기본지식 없이 개발이 불가능하듯 뚜렷한 목적 없이는 개발의 의미도 없다. 차라리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칠 목적이라도 있으면 좋았으련만!

진짜 그럴까, 취소. 악인보다는 범인이 덜 해롭다.


개발은 무척 힘들다. 나는 내가 개발한 것을 세상에 보이고는 싶지만, 왜 그러고 싶은지 아직도 불분명하다. 과거 상담을 할 당시 선생님께서 내가 의미나 목적이 없다고 하셨다. 아, 1년 반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나를 위해 개발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다. 이기적인 것이 나쁘다는 것은 세상의 생각이라고 믿는다. 내가 맞는지 세상이 맞는지 모르지만. 이견은 있다. 나는 세상에 속하는데 세상은 나에게 속할까. 내가 졌다. 혁명을 일으킬 신념이 아니라면, 맞는 것을 따를 것. 그럼 난 왜 개발하는가.


앞으로 50번의 개발된 글들이 더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파주에 살며 멀리 못 보고 지금의 글만 생각하지만 여기서 벗어나 넓고 멀리 볼 줄 알게 된 나는 50번의 개발들이 발전하면 좋겠다. 그러면 이 글과는 달리 ‘중구난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는 않는 글이 될 것이다. 나 계속 발전된 개발을 보일 것이다. 꼭, 약속한다.


개발은 너무 어렵다. 조금 더 정돈되고 깔끔한 글을 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나의 못돼 먹은 천성이 저주스럽기도 하다. 꼬리가 불타버린 비행기 아무 데나 추락하는데 내 글에 아무 글자가 쓰이고 있다. 펑, 터져버리면 좋겠다. 부끄러워 누구에게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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