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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Aug 09. 2021

7월 3주 차

살피다 : 자세히 따지거나 헤아려 보다.

살피다


 같은 것을 봐도 느끼는 것은 다르다. 누군가는 어둠 속에서 희망을 찾지만 누군가는 어둠은 절망의 늪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과도 같다고 할 근거는 없다. 설령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꼈다면, 이는 진리거나 우연히 겹쳐진 종이 위의 종이일 뿐이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진리를 알거나 믿지 않는 세상이라면 누구도 자유하지 못하여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지극히 인간의 관점에서 만인의 동의 없는 진리는 진리의 자격을 지니지 못한다. 결국 당신과 내가 보는 것이 같다는 것은 종이 위의 종이가 똑같이 놓일 그 무한한 확률의 우연일 뿐이다.


 로랑 - 엘레느는 자연을 보며 더 가까이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지만, 그 배경은 사뭇 달랐다. 로랑은 파리 출신으로 닥스에 오기 전까지 파리를 벗어난 적이 없는 도시인 중 도시인이고, 우물 안의 개구리중 개구리였다.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나무는 에펠탑이었고 가장 울창한 숲은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가로수나 센 강, 일몰 때의 구름은 이따금 그가 자연이 교과서가 아닌 실제 세계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그는 독립기념일의 폭죽을 더 좋아했다. 그의 가정은 화목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는데 가족 식사 시간마다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 말수에 그는 어느 집이나 의례 조용한 줄 알고 엘레느의 집을 가기 전까지는 그의 가정이 얼마나 정겨운지에 대한 판단조차 없었다. 로랑이 친구 집에서 하루 밤을 보내거나 친구가 로랑의 집에서 하루를 잘 때는 어디에서건 대화가 넘쳤는데 이는 아이들끼리 부대끼며 나오는 소리로 정겨움의 척도로 삼을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리 토박이 로랑은 중화사상에 심취한 중국인이나 내가 있는 곳이 최고라 생각하는 영국인처럼 파리가 모든 것인 줄 알았고 파리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고려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엘레느를 만나 결혼하기 전 엘레느의 집에 가면서 그를 감싸던 가림막이 빛을 본 드라큘라가 눈 가리며 피하듯 사라졌고 로랑은 우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엘레느의 고향이 닥스였다. 닥스 외곽에 살던 그녀는 에펠탑은 동화 속에 나오는 건물이며 루브르 박물관은 엘리제 궁만큼 접근하기 힘든, 일반인은 가기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파리를 다녀온 이웃에게 귀동냥으로 만든 상상 속 파리는 없는 것이 없는 무엇이든 있으며 모두가 행복한 천국과 같은 곳으로 엘레느는 파리가 지상천국이라 생각하고 실제 천국을 가기 전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럼에도 그런 다짐이나 상상 없이도 엘레느는 자연 속에서 만족하며 살았다. 3녀 중 차녀인 엘레느는 주말마다 가족과 집 근처로 소풍을 갔고 거기서 푸르른 잎이나, 낙엽을 보고 만지며 노는 것을 좋아했고, 3 아이는 잔디 위에서 뒹굴기도 하고, 옆 농장의 양 우는 소리를 따라 하기도 했다. 엘레느에게는 그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세상이었다. 엘레느가 크면서 도시화는 계속됐고 점점 젊은 이들이 일을 찾아 도시로 가면서, 성인이 된 엘레느 역시 직장을 위해 파리로 가기로 결정했을 때, 그녀는 어릴 적 꿈꿨던 환상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고, 닥스에 남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기차의 경적 소리에 맞춰 훌쩍거리며 손수건에 눈물을 닦았다.

환상이 실제가 될 때 나타나는 반응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기대 이상의 실제에 감탄해 푹 빠져버리는 것이고, 하나는 혼란에 혐오를 느끼며 구역질 날 정도로 도망치고 싶어 지는 것이었다. 엘레느의 경우는 후자였는데 역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인파의 출렁임 속에 정신은 아득해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잊은 채 역 기둥에 기대 한참을 기둥을 잡고 서 있었다. 손목의 시계는 60초에 360도를 돌지만 엘레느 옆을 지나가는 인파는 엘레느의 세상이 360도보다 더 빠르게 흘러 마치 60초간 720도를 돌려버려 엘레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겨우 진정된 후 역 밖을 나온 엘레느는, 소민이 그랬던 것처럼, 높은 건물들, 오가는 사람에 또 한 번 놀랐다. 방을 잡고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엘레느는 일을 찾기 시작했는데, 루브르, 오르세 미술과의 그림 속 자연을 보며 또 한 번 고향을 생각했다. 그리움은 삼키고, 파리에서, 도시에서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엘레느는 오르세 미술관에 일을 구해, 처음에는 매표소에서 그리고는 관리자로 일을 했다. 파리의 시간은 닥스와는 다르게 흘러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금기된 행위 같았고, 수많은 파리지앵만큼의 여유만 갖고 지내던 차 엘레느는 로랑을 만났다. 어떤 만남은 우연이라 불리며 어떤 만남은 필연이라면 우연과 필연 속 만남 가운데 운명은 어디 있을까. 그들의 만남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들은 운명을 함께하는 존재가 되기로 했기에 그들의 만남은 운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들이 평생을 약속하며 서로 부모를 보러 갈 때, 로랑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을 해 같이 하지 못했고 어머니와만 식사를 했다. 어머니와 아들 간의 간격은 대체로 아버지와 아들보다 좁아, 좁은 거리에서 세 사람은 대화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는데 이는 로랑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이후 로랑과 엘레느가 닥스로 갔을 때, 로랑은 처음으로 화목을 깨달았다. 엘레느의 부모는 두 딸과, 장녀는 이미 결혼해 해외로 간 참이었다, 스스럼없고 장난과 웃음 넘치는 식탁을 만들었고 그 사이에 낀 로랑은 화목을 느끼며 창 밖으로 떨어지는 낙엽과 떨어지는 잎에 맞춰 터지는 웃음소리, 햇살이 식탁을 비추며 따뜻하게 감싸주니 음식이 더 폭신하다고 생각했다. 자연이 로랑에게 그 매력을 뽐낸 차였고, 집안 분위기와 함께 로랑은 그 따스함에 어느새 스며들어 있었다. 파리로 돌아온 그들은 곧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한 후 그들의 앞 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계획이 존재함은 계획대로 되지 않음에 그 이유가 있어, 그들은 무너질 계획은 잊고 그들의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 자연을 느끼기, 화목을 갖기, 아이와 가정을 이루기. 이러한 마음의 끌림에 따라 닥스로 이사를 가고, 이 무렵 엘레느도 파리 생활에 많이 지쳐있었다, 늘 대화하며 화목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맞지 않아 아이만은 생기지 않아 힘들어하던 중 입양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의 사정을 아는 지인들이 입양을 권유하면서 부부는 입양에 대해 찾아보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소민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민은 날이 갈수록 외부 세계 보는 것에 더 더 빠졌다. 내 앞으로 톱스타가 지나가면 그 빛나는 광채에 눈부셔도 해바라기처럼 처음부터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구석구석 담아두기 위해 바라보는 것처럼 소민은 그림 그릴 때는 그 대상의 작은 디테일, 예를 들어 바나나 껍질의 멍은 어느 정도 되는지 혹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가지가 몇 번을 이겨내는지, 에 눈을 켰고 산책을 하거나 집 앞 계단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웃의 구두가 언제 가장 반짝이는지 혹은 지나가는 자동차의 바퀴는 몇 번이나 도는 것일지, 비록 이건 따라갈 수 없어 상상할 뿐이지만, 넋 놓고 바라보기 일수였다. 그런 소민에게 더는 유치원에서 시키는 것을 따르는 것은 지루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시간이었고 급기야는 점점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공교육 시스템에 신뢰를 보내고 있던 로랑-엘레느 부부는 처음에는 가족이 좋아 그런 줄 알고 알겠다 하고, 달래며 지냈지만 소민의 반복적인 거부와 세상을 바라보고, 그리는 것에만 신경 쓰려는 소민을 바라보며 소민의 의중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어린아이지만 자신만의 생각, 고집은 있기 마련이고 그만큼 그림에 진지한 모습을 보면 공교육이 소민을 성장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되려 그 틀에 갇혀 자신의 재능이나 꿈은 펼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했다. 가만 보면 소민이 이미 10대가 되어 진지하게 장래를 고려하는 모습처럼 비추겠지만 소민은 5살이었고, 부모의 염려는 과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천재란 일반인과 달랐기에 그녀의 삶이 얼마나 유별난지 범인은 알기 어려우며, 특히나 천재를 키우는 평범한 부모 입장에서는 그 고민이 아이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제 그들 앞에는 그들의 양육 인생의 첫 갈림길을 앞에 두게 되었고, 소민의 그림을 향한 열정이나 애정을 오랜 시간 지켜봐 온 그들은 그들의 만남처럼 운명적으로 이럴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으며 초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홈스쿨을 하기로 결정했다. 유치원까지 졸업하고 이후로는 엘레느가 학교 수업에 맞춰 짧게 가르치고 그 외의 시간은 그림 그리기를 위해 쏟기로 했다.


 6살이 된 소민의 일과는 반 고흐가 그의 작업을 한참 하던 시기와 비슷했는데 고흐가 술을 마셨다면 소민은 우유를 마셨고, 고흐가 9시부터 18시까지 그림만 그렸다면 소민은 오전에 엘레느와 공부를 하고서야 그림을 그렸다. 소민은 집 앞 계단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매일같이 앉아 바라보고 있으니 처음에는 어린 동양인 소녀가 길에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보기도 하고 선의로 부모는 어디 있는지 묻기도 했지만 하나의 석상처럼 매일같이 앉아있는 날들이 쌓이면서 처음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는 기분 좋은 눈인사로 그리고는 간단한 일상 대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뭐하는지와 같은 근원적 질문, 어떻게 지내는지와 같은 일상, 오늘은 뭐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로랑이 일에서 돌아오면 셋이 산책을 가기도 했는데 이른 산책에서는 해지는 모습을 보며 해가 질 때는 왜 붉어지는지 묻기도 했고, 늦은 밤 산책에서는 하늘에 뜬 별을 보며 이름 짓기도 하고, 달을 보며 불멍 때리듯 달멍을 때리기도 했다. 자연을 바라봄에 있어서는 익숙해져도 지겨움이란 없는 법이고, 매일 같은 풍경은 새로운 감흥을 주지 못해도 자연을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과 기분을 불어넣으니 소민은 그 반복적인 일상에도 지루해하지 못하고, 매일 같은 눈의 즐거움을 누리며 이따금 자신 마음의 감정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도 하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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