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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Aug 16. 2021

7월 4주 차

상상하다

상상하다 :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보다.

 시대가 변하면서 누구나 창작을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누구나 창작을  필요도 없다. 과거   창작이란 감히   있는 것이 아니고 허락된 이가 아니라면 마음의 불씨가 피어오를 때마다 자신만의 기록물로만 보존하거나 억지로  불씨를 꺼버려야 하는 세상이었지만, 이제는 머리와 손보다는 눈이 대접받는 세상이 되어 그저 보는 것에 만족하는, 상상이나 창작은 그야말로 결과물만 추앙받고 과정을 담는 제작이란, 몇몇 전문 창작자를 제외하면 누구나   있음에도 굳이 도전하지 않는 세상이  것이다. 언젠가 어린아이들은 부모들의 입이 만들어주는 세상을 듣고 상상했고, 언젠가 아이들은 동화  이야기를 들으며 동화  세상을 상상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도 먼저   있게 되면서 상상할 필요가 없어졌다. 상상하지 않는 아이는 꿈꿀  없는 법이다. 소민은 다행스럽게도 어린 시절부터 로랑-엘레느 부부의 이야기와 동화를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상력을 키워왔는데 이는 당장 눈앞의 것을 그릴 때도 도움이 되었을뿐더러 커가며 자신의 세상을 만들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밑거름이 되었을 것임은 자명했다.


 독실한 신자였던 로랑-엘레느 부부는 소민을 칭찬할 때는 천국 이야기를, 혼낼 때는 지옥 이야기를 언급했는데 그때마다 소민이 웃거나 울었던 것은 천국에 대한 소망이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소민이 로랑-엘레느 부부와 함께할  있다 혹은 없다와 같은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소민의 안중에 천국과 지옥은 없고 오직 그녀의 부모가 그녀와 함께할  있는가에 있었지만, 반복적인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그녀의 상상을 자극해 과연 부모가 말하는 세상은, 어린아이에게 신앙이란 예수와 같은 성인이 아니라면 갖기 쉽지 않은 부분이므로, 어떤 세상일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교회를 가면 교회에 있는 조각상과 그림을 보면서 이것들은 뭘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이따금 교회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신이  소민과 함께한다는 성경의 말씀과는 별개로 어린 소민에게 신이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소민의 부모만이 그녀의 신과 같은, 무엇이든   있는 그런 전지전능한 존재였을 뿐이었다.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혹은 상상력을 이용하는 법을 아직 몰라서인지 혹은 당연하게도 7살이 될 때까지 소민의 그림은 자신이 본 그림이나 눈앞의 자연의 재현에 불과했다. 자신만의 기법을 논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연구가 필요했고, 아무리 천재일지라도 7살 아이가 그 정도 경지에 다다르는 것은 어려울 것이기에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할 때까지 이를 강요하는 것은 되려 소민으로 하여금 그림에 마음을 잃게 할 뿐이라는 생각에 로랑-엘레느 부부는 소민의 그림에 감탄하면서도 옴짝달싹 못하는 입으로 감히 조언은 하지 못하고 격려해줄 뿐이었다. 물론 그녀의 커리어는 이제 시작이었고, 7살이란 어린 나이지만! 커리어라는 단어와 인생이라는 단어를 고민했는데 사실은 둘 다 사용 가능할 만큼 어리고 또 진지했기에, 사랑과 격려는 그녀가 그림에 더 진심이며 재밌고 열심히 할 수 있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느 가을   계단에서 가로수의 낙엽을 보던 소민의 눈은 떨어진 낙엽을 밟고 지나가는 또래 아이에게로 옮겨졌고, 또래 아이는 자기  떨어진 낙엽 부수는 소리를 자신만의 리듬으로 만들어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옆에는 친구가 있었는데 다음으로 소민의 눈을  것은 친구 입고 있는 옷이었다. 흑인 아이의 상의는 여러 패턴이 그려져 있었고 밑으로는 검정  바지 그리고 다리를 감싸는 스트라이프 줄이  스타킹 양말, 그 위에는 자신  아닌  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소민은 옷의 패턴이 독수리나 올빼미  같기도 하고 치타 무늬 같기도 하단 생각에 흥미를 느꼈고  아이의 대화를 뒤따라갔다. 아이들은 함께 걸음을 걸으며 낙엽 부수는 소리와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그들의 작은 대화로 박자를 만들었고 이를 듣는 소민은 친구와 함께 간다는 것이란 흥겨운 노래가 나오는 여름휴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학교에 도착했을  학교 주변에는 소민 또래 그리고 소민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학생들로 북적였고,  무리의 크기만큼 커다란 소음 덩어리가 학교 주변을 울리고 있었다. 소민에게는 소음마저 아이들을 반기는 환영 노래 같았고 처음 와본 소민에게도, 어떻게 알아봤는지, 반갑다며 환영하는 노래로 들렸다. 노래에 홀려 들어가는 아이들을 따라 소민도 학교로 들어갔고, 북적이는 복도에서 소민은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난데없이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 또래가 모인 공간에 호기심을 가졌다. 아이들은 무리 속에서 재잘거렸고 소민은 자신이  무리에 있으면 어떨지 상상하면서 복도 끝까지 걸었다. 복도 끝에 다다랐을 즈음 소민보다  배는 높아 보이는 선생님들이 자신 교실에 들어가면서 어지러운 소리를 하나의 소리, 소음으로 정돈을 했고 복도는 약속한 것처럼, 사실은 약속한 것이긴 하지만, 조용해졌다. 소민의 숨소리만 들리는 복도 끝은 로랑이 말해주던 이야기의 끝과 같아, 이야기가 끝나면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기에, 소민은 복도 끝에 다다라  곳이 없다는 현실을  자신의 상상을 마음에 담아둔  학교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소민은 엘레느에게 아침에 겪은 일을 이야기하며 자신도 학교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엘레느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는데 이제야 엘레느 자신도 홈스쿨에 적응되던 차였기에 소민이 스스로 학교를 간다는 것은 자신이 잘못 가르친 것은 아닌지에 대해 반문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소민이, 물론 여전히 소피와 친하게 지냈지만, 또래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엘레느는 소민이 집에서는 학교에서만큼 사회성을 기르지 못함을 생각하고는 학교에서 배우는 사회성과 관계 속에서 얻는 새로움이 오히려 소민의 그림 그리기에도 도움이  것이라는 과거 홈스쿨을 고민할  로랑과 나눴던 대화를 기억했다. 동시에 소민의 마음이 일시적인 것인지 그리고 로랑과도 대화를 위해  이야기해보자 했을 , 소민의 알겠다는 대답과는 별개로 소민의 마음은 이미 자신도 알록달록한 옷을 입으며, 자신은 사자 갈기 같은 모자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낙엽을 밟으며 함께 등굣길의 음악을 만들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나무를, 눈을, 일몰을, 강을 보며 함께 걷고 함께 그리며 놀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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