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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Sep 06. 2021

8월 3주 차

스치다 : 어떤 느낌, 생각, 표정 따위가 퍼뜩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지다

 어른이 아이의 스쳐 지나가는 표정을   갖는 생각과 아이가 어른의 스치는 표정을   갖는 생각은 사뭇 다르다. 아이는  단순하되 명확한 편이다. 어른은 속을 보려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도 아이는 겉에 드러난 그대로 받아들일  안다. 소민은 자신의 행동과 , 표현에서 남을 개의치 않았지만, 이제는 자신이 표현할  상대가 어떤 표정이 스치는지 보기 시작했다. 순간 지나가는 표정에 담긴 무관심, 실망, 기쁨, 슬픔, 사랑  감정의 저점부터 고점까지  모든 것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자신의 언행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사람은 작든 크든 좋거나 안 좋거나 영향을 미칠  있음을 알게 되는 소민이었다. 그녀의 친구들이 소민만큼 그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그림 그리자고   순간 스친 친구들의 무관심의 표정과 그들끼리 순간 갖는 아이 컨택에서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소민과 친구들 간 관계가 소원해진 것은 아니었고 사람이란 각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성장의 과정이었다. 여전히 함께 이야기하고, 쇼핑몰에서  구경을 하거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곤 했다.  소민이 로랑-엘레느에게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때는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눈웃음이   주름과 함께 지지만 그녀가 그림 이야기를  때는 여전히 관심 있는 눈썹으로 들썩거리거나 고개의 끄덕이지만 눈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포크 집고 있는 손이나 빠져나온 머리카락을 유심히 보는 등의 난처한 시선처리를 함으로써 그림 이야기에는 다소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있었다.


 이따금 소민은 하루를 지내며 친구나 부모, 선생이 지은 표정을 보고는 집에서 따라 해보고 또 이를 사진으로 찍어 그림으로 남겼다. 처음에는 직접 표정을 지으며 그림을 그리려 했는데 동시에 2가지를 해야 하다 보니 제대로 그리지도, 표정이 유지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표정을 사진으로 찍고 따라 그리기로 했다. 이렇게 소민은 관찰력을 키워갔는데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기억에 담는 것은 순간을 영원 속으로 이끄는 것이며 이를 그림으로 남기는 것은 비가시적인 영원을 가시적인 영원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제 그녀의 그림책에는 웃는 표정부터 우는 표정, 무관심, 당황, 놀람, 미소, 낙담, 우울, 사랑까지 영원히 남을 순간들이 쌓였다. 그 쌓임만큼 그녀가 순간을 포착해 얼굴로, 머리로 그리고 그림으로 남기는 속도도 빨라졌다.


 소민은 쇼핑몰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 보는 것을 좋아했다. 쇼핑몰은 마을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며 그만큼 다양한 사람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한 사람은 생각, 표정, 감정, 행동, 말 그 모든 것에 한계가 있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이 모이면 무수히 많아져 큰 한계를 갖기에 소민이 일상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기 가장 좋은 곳이 쇼핑몰이었다. 특히 쇼핑몰에는 평소에는 보기 힘든 화, 싸움, 고성 지르는 모습을 상대적으로 보기 쉬웠는데, 어린아이의 떼쓰기는 학교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소민 주변의 어른들, 로랑-엘레느 부부, 마리, 소민 친구의 부모들은 대부분 점잖고 화기애애해 다툼은 드물었다. 오히려 소민은 처음 어른들이 싸우는 모습을 봤을 때 되레 놀라 어른이 화를 낼 수 있다며 부모에게 일렀을 정도로 소민은 부정적인 환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쇼핑몰에 여러 차례 오가며 어른들을 관찰하면서 소민도 그 감정을 알게 되고, 자신도 이따금 따라 해 보면서 부족함을 채워가고 그림으로도 남기곤 했다. 세상 모든 이가 천사같이 밝고 좋은 모습만 갖는다면 좋겠지만, 신마저도 분노로 인간에게 재앙과 고난을 내리며 벌하는 세상에서, 좋은 것만 알고 보며 자랄수록 더 크게 화를 입을 세상이다. 그럼에도 소민은 교육적으로 바르게 교육을 받아 부정적 감정은 최소한으로 가지며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어릴  로랑-엘레느와 함께 가던 교회에 대해 어느 순간 소민은 신앙, 성경, 신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성경 속의 사무엘처럼 하나님() 그녀를 부르며 직접 소통하며 한결 믿기 쉬웠겠지만 현대에 그런 일은 보기 드물었고 어른들도 쉽게 믿지 못하는 것을 어린아이가 믿기는, 어린아이의 믿음은 단순해도 확실해야 했기에, 어려웠다. 매주 예배에 가자는 로랑의 말에는  순간적으로 가기 싫은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고 그녀의 부모가 신실한 것을 알았기에 금방 스치는 표정으로만 남기고 돌아오곤 했다. 엘레느가 성경 이야기를 빗대어 이야기할 때는 어느 순간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로 다가와 어른들이 그러는 것처럼 들으면서도 듣는 시늉에 그쳤다. 소민은 불신론자가 아니었다. 아직 신이 존재한다고 믿거나 믿지 않는 확실한 믿음이 없을 뿐이었고, 그저 신의 이야기, 성경 이야기가 이해하기 그리고 믿기 힘들었을 뿐이다. 매주 놀거나 그림 그릴  있는데 교회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시간 아까웠을 뿐이다. 교회에 가면 소민은 출구 근처에 앉으려 했고 자주 로랑이 그러듯 팔목을 들여다봤다, 시계도 없는데. 짧은 다리는 허공에서 펄럭였고 소민의 눈은 사선으로 흩어지며 교회의 그림, 기둥,  등으로 퍼져나갔다. 눈에 보이는  만이 그녀의 즐거움이었다. 매번 이면지와 연필을 챙겨서는 스태인드 글라스의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했고, 기둥과 교회의 외형을 비슷하게 그리려 했다. 오히려 소민에게는 이것이 그녀를 그나마 교회로 이끌고,  시간을 보낼  있는 안식처였다. 그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밀고는 그림에 몰두했다. 신이란  끝에는 누구나 같은 존재를 만나지만,  시작과 과정은 모두에게 다르 소민에게 시작은  고흐의 그림이고  과정에 그림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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