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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Sep 27. 2021

9월 2주 차

쏟다 : 마음이나 정신 따위를 어떤 대상이나 일에 기울이다.

뭔가,,, 노잼인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요,, 왠지 전 그래서 참 불안하답니다~ (흑)



 고민은 순간이며 현실은 영원하다. 로랑-엘레느 부부와 소민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어찌 되었든 소민은 여전히, 과거와는 다르지만, 예술 활동을 하고 있었고 친구들과 예술 활동을 하는 소민은 전보다도 더 밝아 보일 때가 있었다. 부부는 소민에게 너무 늦게까지 놀지는 말고 돌아오라 권유했고, 소민은 디 레지 활동이 하교 후 시작하니 저녁 전까지만 놀아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에 알겠다고 했다. 또 부부는 소민에게 디 레지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고, 소민은 자주 부모와 이야기를 했왔기에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래피티, 그래피티가 예술 부원으로 인정받는 시대라고 하지만 누구나 반 고흐나 다 빈치의 그림처럼 당연한 예술 부원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공공장소나 길거리에 그래피티를 그리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거슬리며, 도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이었기에 이를 단속해야 하는 경찰관이나 시청 직원 같은 공무원을 이를 좋게 보지 않았다. 부부는 아이의 개성이 자칫 공공장소의 훼손으로 이어지는 그래피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래서 암묵적으로 개성을 존중하는, 상황이었다.


 소민은 부모와 약속을 한 이후 디 레지 활동에 더욱 힘을 쏟았다. 매일같이 그들과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들과 시간을 보낼 때, 특히 그래피티를 그릴 장소를 찾아다니거나 그래피티를 그릴 때면 더더욱 열과 성을 다했다.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공공장소에서 벽을 칠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공무원이나 오가는 시민들의 눈초리는 그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들은 자연히 인적이 드문 곳으로 돌아다녔고 이따금 거리의 부랑자를 만나기도 했다. 부랑자들은 어둠 속에 사는 존재 같아 보였지만 말을 붙이면 그 속이 검지는 않았다. 그들은 때때로 삶으로 거듭해온 자신들의 저항을 이야기해줬고, 소민과 친구들은 이야기의 진위와는 별개로 이야기에 취해 부랑자를 그들의 영웅으로 삼곤 했다. 부랑자의 말투, 머리와 모자, 옷, 제스처까지 소민과 친구들은 부랑자들의 이야기, 그 삶 그리고는 그 삶을 구성하는 모습까지 영향을 받아 반대로 제스처, 옷, 머리와 모자부터 시작해 그들의 삶을 따라가려 했다.(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몇 년에 걸쳐야 했기에 실제 그랬는지와는 별개로)

두려움이란 뒷걸음질 치거나 가만히 있게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게도 하는 법이다. 구제 옷을 구하러 돌아다니고 입어보며, 서로 평가해주며 부랑자 흉내를 내는 것은 소민이 디 레지 멤버들과 놀 때뿐 아니라 학교를 가거나 부모와 교회를 갈 때 등 일상에서도 이어져 부모는 우려하기 시작했다. 예술하는 사람이란 자유롭기 마련이지만 소민이 자칫 잘못된 길에, 적어도 로랑과 엘레느의 입장에서 잘못된 길이라 생각되는, 빠질까 봐 소민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부랑자를 가까이하지 말라는 조언부터 옷 입는 방식, 돈 쓰는 것 더 나아가 그래피티를 포함한 디 레지 활동에 난색을 표했다. 부부의 입장에서는 소민의 장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부모로서 개입이었지만, 당사자 소민에게는 저항이라는 디 레지 활동의 근거가 되는 개입이 되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부모보다는 자신의 친구를 믿고 함께하며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디 레지의 멤버들은 소민의 부모가 소민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런 말은 무시하자고 하거나 자신의 가족도 똑같다며 어른들은 다 그렇게 겁이 많다며 우린 그렇게 되지 말자고 말을 해 소민의 반항심에 힘을 더했다. 소민과 부모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소민은 부모와 말을 줄이고, 집에서 시간은 더 적게 보내며 디 레지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실제 소민의 세상의 전부와 같았고, 활동에만 전념했다.


 바실의 촬영 아래 소민과 가빈, 이사벨은 엠마가 트는 음악 위에 그들의 그림을 그렸다. 촬영한 것을 다 같이 보고 좋아하며 편집을 하면 바실은 SNS에 올리곤 했는데 그들의 활동을 보고 가끔 그들에게 접근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그림이나 영상이 좋다고 칭찬을 하며 만나자거나 같이 놀자고 하는 그들의 말에 소민과 친구들은 기분이 좋다가도 또 괜한 두려움에 거절을 하곤 했다. SNS는 발을 넓혀 누구든 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었지만, 실제를 살아가는 좁은 네트워크는 나와 우리를 구성하기에 미지인의 웃음은 그들에게 결코 안심 주는 웃음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만난 적 없는 예술인보다 언제든 그들을 해칠 위험이 있는, 허구인지 실제인지 모를 이야기하는, 부랑자가 더 믿음직했다.

그들은 바깥으로는 저항의 방패를 내세우며 각자의 활동에 모든 것을 쏟으며 돈독하게 모임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고립된 섬 같은 그들은 스스로를 지킬 충분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니어서 외부의 휩쓸릴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들이 커 가며 자라는 키만큼 그 틈 속으로는 세상의 바람이 불었고 바람에 조금씩 금도 생기며 활동에 모든 것을 쏟지는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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