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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Sep 20. 2021

9월 1주 차

심사숙고하다 : 깊이 잘 생각하다

 자식이 되어 부모의 속을 썩인 적 없는 경우가 있을까. 도리어 자식이라면 한 번은 부모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소민은 어릴 적부터 선했지만 언제까지 흰 도화지로 있을 수 없고 그녀의 그림처럼 하나하나 색을 입기 시작했다. 소민이 부모의 속을 뒤집었을 때 부모는 이전과 다른 소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곤란했다. 소민이 늦게까지 놀다 오는 날이 생기거나 단순히 학교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부부는 소민이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음에 안심하고 공부는 꼭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의 담임인 마리가 엘레느에게 학교에 나와 한 번 이야기를 하자고 말했을 때 부부는 어쩌면 소민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상담이란 그렇다. 내부는 조용하고, 진지한 분위기, 뜨거운 차나 커피에 피어오르는 김을 기준선으로 선생님과 부모가 나눠 앉는다. 운은 선생님이 먼저 뗀다.

‘어서 오세요, 반가워요. 커피라도 한 잔 드릴까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감사합니다.’

‘요즘 소민은 어떤가요? 집에서 예전처럼 잘 지내고 있나요?’

‘그럼요, 소민은 잘 지내요, 예전보다 가끔 늦게 들어오는 날도 있지만 집에 오면 그날 있던 일 이야기도 하고 그래요.’

‘그렇군요, 근데 소민이 예전보다 학업에 소홀한 것은 아시나요?’

‘네, 다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요. 공부가 학생의 전부가 아니고 알다시피 소민은 그림만 생각하는 아이니깐요.’ ‘그렇죠? 소민이 그림에 더 진심인 것이야 지켜봐 온 저도 잘 알죠. 그런데 요즘 그림은 자주 그리나요?’

‘그림이요? 그러고 보니 소민이 그림 보여준 것도 꽤 되었네요, 요즘 집에서는 영상을 계속 보더라고요.’

‘어떤 영상이요?’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미술 관련 영상인 거 같긴 했어요. 색칠에 관한 것이던데.’

‘엘레느, 소민이 요즘 많이 달라졌어요. 요즘은 미술 시간에 예전만큼 적극적이지 않아요. 학교에 관심도 없는 것 같고요. 소피에게 혹시 소민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니, 소피 말로는 요즘 새로운 친구들이랑 자주 돌아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집에서도 소민을 한 번 더 주의 깊게 봐주어야 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네, 알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야기는 이랬다. 소민과 소피는 종종 강가에 산책하러 다녔는데 하루는 다리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가까이 가보니 또래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방독면을 쓰고, 시끄러운, 자동차의 클락션보다 더 깨지고 긁는 듯한, 음악을 틀고는 웃고 이야기하며 벽에다 낙서를 하고 있었다. 소피는 그들의 모습이 껄끄러워 그냥 지나가자고 했지만 소민에게 그들은 새로운 끌림이었다. 소피의 만류를 뿌리치고 소민은 그들에게 다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시끄럽던 음악은 엠마가 고른 음악이었다. 벽에 그림을 그리던 이사벨과 가빈, 이 모든 것을 찍고 있는 바실. 스스로를 예술 집단 ‘디 레지’라 소개한 그들은 다시 그들이 하던 것을 계속했다. 그녀를 끌었던 것은 역시 그림, 그래피티였고 소민의 눈에는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며 그림과 하나가 되는 그들의 몸짓이 보였다.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도 그래피티를 그려볼 수 있냐고 물어본 이후로 그들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디 레지라 이름 지은 그들의 원동력은 저항이었다. 세상이, 사회가 그리고 집안이 반대하는 활동을 통해, 어려도 그들은 엄연히 인간이었기에 분명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들의 숨통을 틔인다고 말했고, 소민에게 그런 벽이 무엇인지 물었다. 편하게 사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님에도 소민은 질문을 듣는 순간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녀의 삶에는 벽도, 거친 반향도 없었다. 소민은 질문에 답하지 못했고 자신도 디 레지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심사숙고하는 척을 하더니 금방 환영한다며 소민을 반겼다.


 디 레지의 멤버들이 그녀의 그림을 보고 감탄한 것은 당연했고, 소민은 그들의 칭찬은 주머니에 넣어둔 채 가방에 있는 스프레이를 손에 쥐었다. 이사벨, 가빈의 가르침과 그림으로 단련된 그녀의 손질 그리고 타고난 재능으로 소민은 그 몸짓만큼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갔다. 그리고는 이사벨, 가빈과 함께 그리기도 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또 한 발 발디뎠다. 자주 그들은 닥스의 도심부터 외곽까지 걸어 다니며 이야기하고, 장난치고,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고, 벽과 바닥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들은 놀라운 구글을 통해 바스키아를 비롯한 거리 예술가에 대해 알아보고, 친절한 유튜브를 통해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 배웠다. 소민은 어느샌가 붓은 내려놓고 새로운 장르의 미술로 나아가고 있었고, 디 레지와 그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도로에 낙서를 하고, 소리를 지르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10대의 모습이 결코 어른들의 세계에서 우호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뿐이다.


  레지와  활동 그리고 이를 즐겁게 참여하는 소민을 보면서 부부는 당혹스러웠다. 지금껏 소민도 그리고 부부도   이런 일탈은 없었기 때문에, 부부의 어릴  일탈은 부모 말에 반항하거나 약속을 어기고 방에만 있는 등의 일반적 일탈이었다, 부부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가늠을 못했다. 결론은 없고, 과정과 고민, 토론만 있는 시간, 그리고 길을 몰라 그저 조용하고 가만히 있는 시간만이 계속됐다. 소민이 그런 부모를 이해하지 못해 자리를 일찍 떠남은 당연했고 부모의 고민만  자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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