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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Oct 04. 2021

9월 3주 차

알아채다 : 알고 정신을 차려 깨닫다.


 악재는 신기하게도 동족의 냄새를 맡고 따라오는지 겹치는 경우가 잦다.(설상가상이란 사자성어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소민과 부모의 마음이 멀어진 즈음, 엘레느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매일 밤 저녁 식사 이후 엘레느와 로랑은 산책 겸 운동으로 마을을 걸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던 엘레느와 로랑은 매해 늘어나는 체중계의 알림에 더는 놀아나지 않기 위해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혼자 하면 심심하고 귀찮아 금세 포기할지 모르는 운동을, 특히나 둘 모두 달가워하지 않았던,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자신과 서로의 건강을 위해 또 둘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늘 저녁을 먹고 난 이후에는 산책 겸 운동을 했다. 어쩌면 걸으며 소모되는 칼로리보다 말로 증발하는 칼로리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작은 것들이 쌓이면 커지기 마련이지만 찾아온 악재는 건강을 찾기 전 나타나 공들이던 탑을 무너뜨렸다. 아니, 최소한 마음은 무너뜨렸다. 매해 건강검진에서 의사에게 꾸준한 운동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엘레느는 소민이 11살에서 12살이 되어가던 즈음 큰 병원에 가 진단을 받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심은 확신이 아니기에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편이다.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의 이야기에 엘레느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겨우 진찰실에서 나와 복도에 앉을 수 있었다. 로랑에게, 소민에게는 뭐라 말할지, 죽어버린다면,,, 그 공포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남은 이들에 대한 걱정. 자신은 술도 담배도 안 하는데, 운동 그래도 꾸준히 걸으며 하고 있는데, 몸에 안 좋은 것은 가까이 안 하고, 착하게 또 신실하게 살았는데,,, 죽음. 인간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지만 누구도 이를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다. 착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자신에게 죽음은 없을 것이라 믿는 것도 같다. 죽음이 다가와 문을 두들길 때 비로소 인지하고, 끝없이 밀려오는 생각에 이내 잡아먹히고 만다. 아직 어떤 병이 있다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대뜸 던져진 의사의 말에 엘레느는 지금을 잃고 과거와 미래만 생각하게 되었다.


 겨우 집에 돌아온 엘레느는 주어진 집안일에 치여 잊고 있다가도 문득문득  병으로 죽어버릴  같은 걱정에 그대로 멈춰서는 나오려는 눈물을 막기도 하고 한숨 쉬며  때리기도 했다. 저녁 식사 유독 조용한 식탁에 로랑은 엘레느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알아채고 궁금했지만 물어보기 왠지 어려워 저녁 산책  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소민은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우연히 그날이  날이었다, 이전과 다른 분위기와 우울함이 묻어나는 엘레느의 표정에 자신 때문인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나 하다가도 금기와 같은 무소통을  자신이 없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느라 조용히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산책 가기 싫다는 엘레느를 달래며 밖으로 나온 로랑은 말없이 걷다가 운을 띄웠다.


 ‘조만간 더 두꺼운 옷을 입어야겠다. 저녁은 꽤 쌀쌀해.’ ‘…’ ‘오늘은 호세가 고향에 간다고 휴가를 냈는데 그 기간 동안 호세 몫까지 다 나에게 넘긴 다더라니깐. 지금도 할게 많은데 너무한 거 아니야?.’ ‘…’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평소랑 맛이 약간 다른 것 같던데 혹시 새로운 소스를 넣었어? 엘레느, 난 엘레느를 10년 넘게 봐왔는데 그거 알아? 엘레느는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 무슨 일이 있었길래, 우울해 보여.’ ‘로랑,,, 로랑은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지?’ ‘갑자기 왜? 나야 엘레느가 없어도 잘 살겠지만 함께 살면 더 잘 살겠지. 지금처럼 말이야’ ‘소민은? 소민은 나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소민이 상처 줬어 혹시? 우리가 이해하자 아직 어리고 사춘기잖아. 곧 괜찮을 거야.’ ‘나 소민과 사이 회복하지 못하고 끝나면 어떡하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조만간 화해의 자리를 만들어 다시 잘 지내보자. 소민도 속으로는 같을 거야. 표현이 서툴러 그럴 뿐이지, 무슨 일이길래 그래?’ ‘로랑, 오늘 건강검진 결과를 받으러 갔는데,,’ ‘아 맞아, 왜 운동을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해? 요즘 이렇게 운동하니 괜찮을,,,’ ‘아니, 나보고 큰 병원에 가보래.’ ‘왜?’ ‘아직 모르겠어, 로랑 나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아.’ ‘엘레느 진정하고 내 말 들어봐, 잠깐 여기 앉자.’ ‘응,’ ‘갑자기 큰 병원은 왜? 무슨 문제 있데?’ ‘간 쪽에 이상이 있는 것 같데. 나 어떡해.’ ‘엘레느 들어봐. 아직 확실한 건 아니잖아.’ ‘응..’ ‘병원도 그냥 의심이 조금 된다고만 했고.’ ‘응,,,’ ‘그러면 같이 병원에 가보자. 확정도 아니니까 굳이 안 좋게 생각하지 말고. 괜찮을 거야’ ‘그렇지만,,,’ ‘마음이 어렵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내가 옆에 있잖아. 소민도 옆에 있고. 그리고 소민과도 자리를 만들어 다시 잘 지내보자.’ ‘응,,, 소민은,,,’ ‘별일 아닐 테니까  아무 말 말자.’ ‘응,,,’ ‘걱정 말고, 괜찮을 거야. 진단받고 여행이나 갈까? 기분 전환하자. 어디 바다 쪽으로 갈까?’ ‘그래, 그러자, 다시 걷자, 고마워,’ ‘당연한 거야. 늘 힘이 될 거라 했잖아.’

 

 집에 돌아온 부부는 산책을 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낸 듯했고, 닫힌 문 건너 들리는 부부의 화기 로운 소리에 소민은 엘레느의 우울이 자신과는 연관이 없으며 별 일이 아니었다 생각하며 다음에 그릴 그래피티 기법에 대해 찾아봤다. 엘레느와 로랑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조용한 집안,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조용함은 악재를 잊은 듯했다. 악재가 악재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와는 별개로 지금을 사는데 아주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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