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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Oct 11. 2021

9월 4주 차

여행하다 :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다.

조금은 이른 휴가지만 매해 가던 가족 여행이었기에 소민은 이른 휴가, 부모와의 갈등에도 무심한 표정과 말투로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해) 알겠다고 했다. 가족 여행은 언제나 국내였다. 멀리  때는 기차를 타고 파리, , 니스, 마르세유로, 가까운 곳에  때는 자동차를 타고 모나코(해외라면 해외지만), 바욘, 비아리츠로. 이번 여행은 엘레느의 건강 검진이 계기인 만큼, 소민은 자세히 모르지만, 전적으로 엘레느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파도 소리에 마음의 고민을 씻어 내리고 침묵의 자동차 길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나 오래 감당할  없을  같아 가까운 바다인 비아리츠로 가기로 했다.


 비아리츠로 떠나는 날 보르도에 먼저 간다는 말에 소민은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관계 회복 기회를 노리던 로랑이 엘레느의 건강 검진을 받으러 잠깐 들리는 것이라 했다. 입을 다문 소민의 눈썹에는 ‘오늘 왜 굳이?’라는 비스듬한 굴곡이 지어졌지만, 어른의 세계를 몰랐기에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이미 정해진 일이란 생각에 아무 말 없이 차에 앉아 창 밖을 바라봤다. 매일같이 가는 공원, 강, 쇼핑몰 등을 지나, 무채색의 고속도로, 너무 넓어 사람이 눕거나 서 있어도 티 하나 안 날 것 같은 들판을 지났다. 파리, 마르세유 같은 큰 도시를 가본 적 있는 소민에게 보르도는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소민의 눈길을 끈 것은 보르도에 들어오면서 지나친 포도 밭이었다. 포도가 열린 풍경 때문인지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포도향에 취했는지 한동안 그래피티만 그리던 소민은 오랜만에 붓을 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설령 천국이 옆에 있어도 직진만 가능한 고속도로에서는 이를 지나쳐야 했기에 뒷자리의 소민은 지나가는 풍경을 기억 속에 붙잡아둘 뿐이었다. 엘레느가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간 사이 소민과 로랑은 근처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었다. 이따금 커피를 입에 대기 위해 손을 커피잔으로 뻗을 때마다 로랑은 맞은편에 음료를 시키고는 그림을 그리는 소민을 바라보곤 소민과 풀어보려 기회를 봤지만, 소민이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에 감히 침묵을 깰 수 없었는데 어릴 적부터 소민이 그림을 그릴 때는 쉽게 건들지 못하는 공기가 주변을 잠식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에 더욱 그럴 것이 소민은 지나친 포도밭을 기억하고 그려내느라 모든 정신을 쏟았고, 그림에 빠진 순간에는 자신이 카페에 있는 것조차 잊었다. 심지어는 엘레느가 검진을 마친 후 병원에서 카페로 와야 했다. 엘레느가 도착해 만든 의자의 바닥 긁는 불편한 파장만이 눈치 없이 소민 근처의 공기에 다가갔고 소민도 그제야 엘레느가 온 것을 알았다.


 저녁 식사를 하며 3 가족은 오랜만에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로랑은 늘 그렇듯 적극적이며 거침이 없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니? 큰 일은 없고? 이렇게 다 같이 밥 먹는 것도 오랜만이다 그렇지?’ ‘,,, 그냥 똑같아요,,,’ ‘보르도는 웃기게도  닥스 근처 가장 큰 도시인데 정작 처음 오네. 도시에 대한 소감은 어때?’ ‘글쎄, 도시란 결국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큰 교회, 높은 빌딩, 둘 중 하나죠 뭐.’ 유럽을 이미 다 가본듯한, 무심한 말이었지만 어쩌면 도시란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가? 그래도 도시마다 조금씩은 다르지 않을까. 그래도 여행 오니 기분은 좋지?’ ‘뭐, 나쁘지는 않아요, 생각보다 가족 여행이 이른 감은 있지만 문제 될 것도 없고요.’ 여행은 닫힌 마음을 열어주며 그 틈을 놓칠 로랑이 아니었다. ‘그렇지? 오랜만에 가족끼리 이렇게 시간을 보내니 아빠도 너무 좋다. 사실 소민이랑 다툰 이후 미안하고 서운했거든, 엘레느도 그렇고. 그렇지?’ ‘응,,’ ‘소민은 어떤지 말해줄래?’ ‘,,, 저도 똑같아요.’ ‘그래? 그럼 우리 화해하고 다시 잘 지내볼까? 그때는 우리도 소민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를 원하는 대로 전달을 못해 오해가, 갈등이 생겼던 것 같아. 이제는 과거니 덮어두고 이번 여행을 계기로 다시 잘 지내보는 거야. ‘,,, 좋아요,,,’ ‘소민, 늘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말, 감정은 담는 것이 좋은 게 아니야.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이 좋단다. 소민의 감정을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해주겠니? 속에 담아둔 말이 있으면 뭐든 해도 좋고.’ ‘후, 나도 엄마, 아빠랑 다시 잘 지낼 수 있어 좋아요, 그동안 죄송했어요.’ ‘우리도 미안해 소민. 소민이 별 일 없이 지내고 있었다는 것도 너무 고맙고. 오히려 그래서 디 레지를 더 믿을 수 있겠구나.’ 여행. 비행기, 기차, 버스, 자동차, 자전거, 걸음, 무엇이든 그 나아감에는 자유가 있고 자유 속에는 모든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무한함이 있다. 여행이란 그 무한한 자유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소민은 잘 지낼 마음이 있었음에도 일상이란 익숙함에 묶여 그 실마리를 풀지 못했지만, 가족 여행이란 자유 속에서 닫힌 문을 열고 새로운 시작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돌아오는 일상에서도 일어날 새 일을 받아들일 준비해야 하는 소민의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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