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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Nov 02. 2021

10월 3주 차

음미하다 : 어떤 사물 또는 개념의 속 내용을 새겨서 느끼거나 생각하다.

안녕하세요, 글이 늦었군요,, 공지 기능이 있으면 미리 알릴 텐데 없다 보니 약간은 어려움이 있네요, 양질의 글을 매번 드리고 싶은데 쉽지도 않고, 쉬는 날 일정이 있으면 기한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더군요,, 허허,, 그래도 더 노력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말이 잘 들리지 않는 때가 있다. 들어도 흘려버리거나 금세 잊어버리지만, 그러다가도 어느샌가 다시 떠올라 조각난 문장들을 다시 맞추기도 한다. 엘레느의 가쁜 숨에서는 소민을 위한 말들이 있었는데 당시 소민은 생명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에 슬퍼서 울고만 있었다. 그 울음에 귀는 잠식됐고, 침통한 분위기와 울음 사이를 비집고 지나간 엘레느의 말들은 잠복기처럼 귀 주변에 있다가 로랑이 정신을 차리고 소민을 챙기면서 귀 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소민, 미안해. 나는 소민의 친엄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민의 엄마일 수 있어 참 행복했어. 소민의 그림이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못 보고 이렇게 가서 미안해, 그래도 천국에서 보고 있을게. 소민은 세상을 사랑하고 그 마음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재능이 있어. 그렇지만 그림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거 잊지 마. 행복하게 살아야 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알겠지?’


 사람은 비단 서로에게 미안하다. 소민은 엘레느가 말한 마지막 말을 음미하다 엘레느가 미안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소민은 엘레느에게 누누이 말하던 그림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했지만 엘레느는 무엇이 미안한지 감을 잡지 못했다. 미안한 것은 무엇인지 말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며 떠난 자가 남겨놓은 말은 그 속을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소민이 엘레느처럼 침대에 누워 똑같이 미안하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미해결 문장으로 무의식의 중천을 떠돌 것이다. 


 친엄마와 엄마, 엄마는 다 같은 엄마지 이런저런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분은 갈등과 혼란만 야기한다. 엘레느가 떠나며 남긴 친엄마라는 말을 두고 소민은 처음으로 친엄마에 대해 생각해봤다. 인간은 모두가 생김이 다르니 자신이 로랑과 엘레느와 다르게 생긴 것은 문제없다고 생각해온 소민은 혼란 속에서 출생에 대한 궁금증의 씨앗이 심겼다.(웃기지만 소민은 피부색과 유전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자신은 어디에서 난 것일까.


 소민에게 사랑은 어려운 것이었다. 습관처럼 ‘사랑해’라고 집에서, 책에서, TV에서 뱉어대지만 정작 아무도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엘레느는 소민의 그림에 사랑이 담겨있다고 했지만 소민 스스로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었다. 소민에게 그림은 그저 그림이었다. 물론 소민은 자신이 볼 때 마음에 드는 것을 그렸지만 그것이 사랑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은 없었다. 사랑이란 어렴풋이 크고, 어렵고,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추측만이 난무해 텅 빈 건물 같아 존재하지만 가까이 가본 적 없는 그런 것이었다. 더불어 소민이 엘레느를 위해 준비하던 그림은 생각만 해도 괴로운 기시감이 있어 전혀 사랑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었다. 엘레느의 말은 어떤 의미인지, 엘레느가 바라는 사랑이 담긴 그림은 무엇인지에 대해 소민은 여러 번 돼 새겨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소민은 어리기 때문에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하며 태어나는 것은 아니기에. 


 소민은 다른 것은 제쳐두고 자신의 출생에 대해 로랑에게 묻기로 결심했다. 음미하는 것은 간단하고 빠른 것이 아니고 두고두고 시간과 함께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유언은 한순간이지만 듣는 이는 반복해 듣고, 기억하며 다잡기도 하고, 결심하기도 하고, 웃기도, 슬퍼하기도 하는 등 여러 번 돼 새김질한다. 다만 소민 스스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에 대해 묻기 위해 로랑이 오는 미래를 기다렸다. 


 엘레느가 한참 아플 때와 마찬가지로 로랑은 매일 일찍 집으로 왔다. 집은 예전만큼 화기애애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따뜻했고 편안했다. 로랑도 소민이 일상으로 돌아간 후 조금씩 엘레느 없는 삶에도 익숙해졌다. 다만 엘레느가 떠난 후에는 소민이 저녁 식사와 산책 후 습관처럼 방에 가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책장 앞에는 로랑 홀로 앉았다. 책 늘어나는 속도는 반으로 줄었고 책을 읽고 느낀 바는 공책에 외쳤다. 그 쓸쓸함은 외롭기도 했지만, 소민이 잠들 즈음에는 의자에서 일어나 쓸쓸함을 털어내고 캔버스에서 자고 있는 소민을 깨워 침대로 인도하며 작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속에 온기를 담아 빈 공간을 채워내곤 했다. 


 그렇게 삶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도중 소민이 말했다. ‘아빠, 내 친엄마는 누구야? 엄마는 내 친엄마가 아니래. 엄마랑 친엄마는 뭐가 다른 거지?’ ‘…’ 로랑은 쉽게 답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했다. 웃음기가 입 속으로 한 순간 숨는 것을 보고 소민은 되려 놀랐는데, 소민은 가볍게 생각하곤 물었지만 로랑의 얼굴의 변화에 바짝 긴장했다. 침묵은 계속되었고 소민은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에 서둘러 밥을 먹고 방에서 다시 한번 엘레느의 마지막 말을 돼 새겼다. 조용한 집안, 그 침묵은 로랑도 소민도 감히 깨지 못했다. 그날은 저녁 산책도 없었지만 각자 방에서 로랑은 어떻게 말할지, 소민은 빨리 밤이 지나길 바라며 일찍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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