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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Nov 24. 2021

10월 5주 차

읽다 : 글을 보고 거기에 담긴 뜻을 헤아려 알다.


 엘레느가 소민에게 그녀의 비밀에 대해 밝힌 후, 그 비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몇 주가 소요됐다. 그 시간은 저녁 후 소화까지 하루가 걸리는 것처럼, 하루를 보낸 아이가 회복을 위해 밤에 자는 것처럼 이해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다. 소민의 질문이 끝나던 밤을 뒤로하고 로랑은 다시 깃든 평안함에 조금씩 몸을 맡기며 삶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었다. 소민은 더는 입양에 관한 일로는 질문하지 않았고 예전처럼 학교와 디 레지 활동 중 있던 일을 이야기했고 때때로 소민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 묻곤 했다. 더는 로랑에게 새로운 시련은 없는 듯 한 그런 시절이 찾아왔다.


 그런 반복적이고 평화로움에 빠져들 즈음에는 외부를 향하는 눈과 귀는 닫히기 마련이다. 뜨고 있는 눈은 블루라이트 필름을 걸친 듯 편안한 색으로 세상을 불편하게 보지 않으며 열린 귀는 이어폰을 낀 채 노이즈 캔슬링으로 주변 소음은 끄고 듣고 싶은 노래만 듣고 있는 것과도 같다. 실제 세상으로 고개를 한 번 돌리면 저 멀리는 전쟁으로, 가난으로 고통받으며 가까이는 집도, 일도 없어 거리의 비극을 한 몸에 받으며 시선과 관심 그리고 적선 한 번을 애타게 바라고 있는 거리의 불행아가 있음에도 말이다. 사람이란 원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매 순간 타인에게 열려있을 수만은 없고 인간이란 불완전의 표상 중 하나이기에 그런 부족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인간의 삶이란 인간의 불완전함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한 차원 높은 복잡성을 지니고 있어, 잠깐 한눈 판 사이 작은 구석에서는 새로운 골칫거리가 두드러기처럼 슬그머니 떠오르곤 한다. 로랑이 그렇게 만족하며 새 삶에 미쁨을 표하고 있을 때 소민은 자신의 방 안에서 새로운 곳에 대해 탐독하고 있었다.


 소민은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것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받아들이고난 이후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본, 중국 못지않게 유명한 나라지만 소민의 세계에서는 아직 정식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았다. 여전히 소민의 머릿속에서는 서구를 중심으로 미술이 펼쳐져 있었고, 소민 자신도 서구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의 동양에 대해서는 인지한 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소민은 한국 출생이라는 비밀이 풀렸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한국에 관해 찾기 시작했는데, 역시 소민의 관심의 시작은 그림이었다. 소민은 한국에 관해 찾아볼수록 놀랐는데 한국을 검색할 때 새로 보게 되는 것은 서양 미술을 보며 새롭게 알게 되는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도화지의 재질과 사이즈부터 같은 자연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바라볼 때 이를 그리는 표현과 피사체를 표현하는 색의 활용방법까지. 더불어 한글이라는 글자의 문양도 소민에게 꽤나 새로웠는데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친구 오드리가 자신은 아랍어를 쓸 줄 안다며 보여줬을 때처럼 라틴어 기반 문자가 갖지 않는 새로움이 있었다. 게다가 한글은 아랍어와는 달리 문자 간의 외형적인 차이가 더 있었기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가 고유성을 지녀 더 독특해 보이는 면도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화를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한글을 문자가 아닌 그림으로 생각해 그림에 섞어보기도 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는 소민의 모습에서는 마치 몇 백 년 전 일본의 우키요에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반 고흐의 모습도 언뜻 보였다.


 만약 소민이 한국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었음을 로랑이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었을까. 다만 이는 알 수 없는 부분인 만큼 억측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로랑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소민은 한국의 그림에서 시작해 건물, 풍경, 사람, 문화까지 한국에 대해 알수록 새로운 면에 빠져들었다. 한글을 그림이 아닌 문자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와 같은 인사말을 배웠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한국 노래도 들을 만큼 듣게 되면서 산책하거나 씻으며 또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소민의 콧노래를 듣던 로랑은 그 멜로디가 한국에서 난 것이란 의심 한 번 없이 소민도 새로운 사실들에 잘 적응하고 있음에 안심했다. 소민이 한국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읽게 되면서 소민 머리 한 구역, 호기심 담당 구역이 이를 삶에 표출하게 될 것은 소민의 모습을 조금만 주의 깊게 봐도 표가 났다. 조금 과장하면 로랑을 제외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을 만큼 말이다. 부모로서 소홀하다고 지적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인간은 인간이기에 누구나 이런 순간을 갖기 마련이란 것을 다시 한번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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