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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Dec 01. 2021

11월 1주 차

자극하다 : 외부에서 작용을 주어 감각이나 마음에 반응이 일어나게 하다.


 소민의 머릿속 생각은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 우선, 소민을 사로잡으면 머리의 중앙에서 떠나질 않는다. 중앙에 자리를 잡은 생각은 차차 하나의 형태가 되는데 처음 사로잡을 때 그 이미지에 생각이 쌓이면서 흐릿한 스케치 위에 색이 입혀진다. 스케치가 생기면 머릿속의 생각을 그림으로 꺼내기 시작하는데 한 번에 그려낼 수도 여러 번에 걸칠 수도 있다. 소민은 머릿속 그림을 구현할 때까지 반복하고 만족할 즈음이 되면 타인에게 그림을 보여주기도 하고 말로 그 일련의 과정을 말하기도 한다. 소민의 머리에서 입으로 나오기까지 나오는 시간은 단순하게 계산되지 않는다. 과거의 일을 현재까지 생각하다 이야기하는가 하면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는 것에 대해, 이미 소민의 머릿속에서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으니, 대뜸 이야기를 꺼내 듣는 이로 하여금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리고 소민이 한국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로랑은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가 몇 개월 지나 다시 이야기가 다시 나타난 것에 놀랐고, 디 레지 멤버들은 대뜸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 놀랐다.


 여름의 열기는 아지랑이를 지상에서 뽑아내 사방에 더위를 뿌리지만 강 건너 지는 해의 무게에 짓눌려 아지랑이가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면 모든 틈이 막혀 대지가 식는다. 어둠이 깔리면 무엇이든 긴장하고 바짝 졸아버려서는 세상은 거리를 두기 시작하지만 조용해야 할 거리에는 낮동안 숨어 지내던 사람들이 시원함을 마시려고 공원에 모이곤 한다. 로랑과 소민 역시 그런 시원함을 좇아 온 사람 중 하나였는데 이들 사이엔, 아니 로랑에게는 일종의 냉랭함이 있었다. 로랑이 들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소민이 다시 한국 이야기를 꺼낼 때 로랑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알게 되었으니 관심을 가질 법하다고 생각하며 들었다. 그런데 소민의 말에는 본심을 가리려는 듯 말 끝을 흐리고 머뭇거리는 면이 있어 로랑은 소민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된다며 소민에게 편하게 이야기하라며 긴장을 풀어줬고, 그 말에 소민은 소심하지만 한국에 가고 싶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한국 이야기를 소민이 다시 꺼낼 때 로랑은 소민이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꺼내나 보다 했는데 한국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며 말은 숨기는 것을 보며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평소 하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은 거리낌 없이 이야기해오던 소민이었기에 뜸 들이는 것에 무언가 작은 일은 아니라고 짐작했고 소민이 말을 한 순간 올 것이 왔구나 같은 큰 파도가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소민이 디 레지 멤버들에게 한국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엠마는 요즘 K-POP을 많이 듣는다며 한국 노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이사벨도 한국 음악을 좋아한다며 동감하며 소민에게 왜 한국 이야기를 하는지 물었다. 소민이 자신이 입양된 이야기부터 시작해 과거 이야기를 했고 바실은 감명받은 얼굴로 너무 좋겠다고 말했고, 무엇이 좋겠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 외의 멤버들은 한국이 기억에 나는지, 친엄마 사진은 있는지,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등에 대해 물었다. 소민은 다른 여타 질문에는 평이하게 답하다 한국을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답이 없자 짓궂은 가빈은 이왕 이렇게 된 거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한국 출생에 한국에 관심도 있는데 가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부추겼다, 물론 이는 지극히 좁은 관점에서 바라본 것으로 어른의 눈에서는 고려할 것들이 넘치지만 이들은 10대에 불과하니 이해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이 말을 듣게 된 소민도 자극을 받아 가지 않을, 또 가지 못할 이유에 대해 생각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커 로랑에게 말하게 된 것이었다.


 로랑은 소민과 산책을 하며 또 한 번 엘레느를 생각했는데 혼자 결정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발생할 때면 떠올리곤 했다. 다만 현실은 공원 벤치에 앉아 오로지 하나의 입에서, 어떠한 눈 맞춤도 없이, 두 사람은 로랑의 답을 침묵 속에서 기다릴 뿐이었다. 로랑은 소민에게 왜 한국에 가보고 싶은지 물었다. 소민은 태어난 곳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으므로 가서 어떤 곳인지 느껴보고 싶다고 답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는 것,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장려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온 로랑이지만 자식이, 그것도 성인도 되지 않은 자식이 부모를 떠나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은 쉽게 허락할 수 없는 문제였다. 로랑은 소민이 성인이 되고 가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소민은 잠시 침묵하더니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것을 싫다며 엄마가 성인이 되기 전에 이야기해준 것은 그전에 가도 괜찮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로랑은 설령 엘레느가 그렇게 생각했을 지라도 그건 로랑이 휴가 때 함께 가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한 이야기지 혼자 보내는 것은 불안하고 위험하다고 이야기했다. 소민은 괜찮다며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위험할 일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키려 했지만, 세상을 아는 로랑은 물러섬 없이 만약 가거든 그건 내년 휴가 때가 최선일 것이라며 올해는 이미 휴가도 끝났기 때문에 불가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는 소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니 이해해달라고 했다. 다만 아이에게 최우선은 항상 아이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그것이 실제 최선이든 아니든, 소민은 로랑의 말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그대로 삐져 벤치를 떠났다. 여름밤 공기는 차가웠고 홀로 앉아있는 로랑은 서늘함에 혹은 소민이 떠난 자리, 고민에 고개를 숙이고는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빠졌다. 로랑은 소민을 처음 입양할 당시 한국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지만 나라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로랑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민이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로랑은 가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가고 싶다는 표현에서 미세한 차이를 느꼈는데 전자는 가볍게 갔다 오는 것을 상정한다면 후자는 가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한국을 가본 소민이 그곳에 빠져 돌아가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로랑에게는 긴 여름밤이 고민으로 줄지어 서 있어 하나하나 들어주며 지내는 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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