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혼] 일기(임신 전)
나는 결혼할 때 제일 듣기 싫었던 소리가,
“아기는 언제 가질 거야?”였다.
아니, 그건 인사차 물어본 말이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언제’라는 시기를 물어본 것이니까. 하지만, “아기는 빨리 가져야지,”,“계획하다 안 생긴다”,“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낳아야 돼.”,“그게 맘대로 되냐?”라는 식의 말들을 듣는 일이 정말, 정말 싫었다.
‘결혼 = 임신’ 이라는 소리로 들렸달까. 결혼은, 남녀가 서로 '부부'이길 원해서 하는 것이고, 임신은, 남녀가 서로 '부모'이길 원해서 하는 것이다. 남녀가 서로 많이 사랑해서 우리를 닮은 아기를 빨리 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부부의 단계를 충분히 거친 후, 부모의 단계를 걷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가 계획하고 보낸, 아이 없는 2년이란 우리만의 시간은, 우리 둘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가져다 주었다.
우선,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열심히 싸웠다. 큰 목소리를 내도 눈치 볼 아가가 없었고, 싸움 후 마음껏 술을 마시고 즐기는 시간을 갖는 등 속풀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징글징글하게 싸운 2년이란 시간 동안,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분명하게 아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
아기를 갖기 전에 마저 이루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적어 이룰 수 있었다. '최대한의 자유로움을 최대한 만끽'하고자 하였다. 거기에는 아기 갖기 전에 꼭 해야만 되는 일도 포함시켰다. 복귀에 대한 계획이라든지. 또,
우리는 한 사람의 한 달 수입은 고스란히 저축해 한 가정의 밑천을 마련할 수 있었다. 외벌이였으면 2년이란 기간 안에는 꿈꾸지 못할 액수가 통장에 쌓여갔고, 그야말로 우리 부부는 뿌듯함을 즐겼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제일 좋았던 건, 둘만의 ‘여행’이었다. 사느라 바빠서 여행의 묘미를 알 수 없었던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을 계기로 여행의 재미를 알게 되었고, “이번엔 어디로 갈까?” 주말 마다 지도를 펼치고 다녀온 곳을 체크해 나갔다.
일 년에 한번씩 둘의 스케줄을 맞춰서 해외도 꼭 나갔다왔다. 신혼 기간에 둘만의 신혼여행을 해마다 다녀온 셈이다. 우리는 언제나, 짐을 싸는 순간이 설레었고, 돌아와 짐을 풀고 마주 앉아 술 한 잔 나누며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벌써 여행이 그리웠다.
이제 와서 보면, 임신이란 것을 계획한 것이, 결혼생활에서의 다른 것들도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한 단계 한 단계 밟아나가는 것이 물론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그 단계에 맞도록 우리 부부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신혼, ‘둘만의' 시간을 오롯이 '둘이서만' 보냈다는 것. 인생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신혼의 가장 큰 기쁨'이지 않을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