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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작가 Oct 16. 2023

엄마가 사준 미사보

선물이니까 괜찮아.


얼마 전, 2023년 첫날에 적었던 나의 위시리스트를 꺼내 보았다. 

"미사보"

유독 세 글자가 눈에 띄었다. 이미 예전에 대모님께서 선물 주신 걸로 주일마다 쓰고 있었지만, 내 마음에 드는 더 이쁜 미사보가 갖고 싶었다. 


천주교에서 미사보를 쓰는 이유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박하고 정결한 생활과 정숙한 몸가짐의 표현에 대한 풍습"이다. 성당에 가면 머리에 미사보를 쓴 여성 신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다양한 미사보 구경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유독 눈에 띄는 멋스러운 디자인의 미사보를 보면 시선이 간다. 머리카락을 가림으로써 욕망을 내려놓고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쓰는 미사보인데, 오히려 미사보 구경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다.


엄마의 미사보가 무척 이쁘다. 자잘한 꽃 자수가 촘촘히 채워져 있어 잔잔한 매력을 더해주고 머리뒤로 늘어뜨려진 라인이 참 멋스럽다. 엄마 친구가 명동 성당에서 구매해서 선물해 준거라고 했다. 성당에 가면 저 멀리서도 엄마가 어디 앉아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와 똑같은 미사보는 아직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가장 이쁜 미사보를 찾으면 그게 엄마였다.

"엄마 미사보가 제일 이쁜 것 같아. 나도 이쁜 거 갖고 싶다."

몇 번 지나가는 말로 엄마에게 말했다. 내 미사보는 보기에 괜찮았지만 자수가 큼직한 편이었다. 엄마는 내게 이쁜 걸 사려면 명동 성당 성물방에 가보라고 알려주었다.


며칠 전, 내 위시리스트에 적힌 "미사보"를 보며 생각했다.

'갖고 싶은데... 못 사겠네'

50,000원 정도면 이쁜 미사보 살 수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성당에 가서 미사 드리고 기도 한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주님 앞에 선다. 새로 산 이쁜 미사보를 쓴 내 모습이 진짜 이뻐 보일까.  본질보다는 외적 모습에 신경 쓰면서 미사 드리러 가는 게 떳떳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억지로라도 합리화시키면 살 텐데 그럴만한 이유를 못 찾고 있었다.

 나는 엄청 절약하는 편은 아니다. 맛있는 것도 잘 사 먹고 이쁜 옷도 종종 산다. 그런데 미사보는 뭔가 어려웠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소비는 금액이 얼마건 하기가 힘들었다.


어제 엄마가 내게 뭔가를 건네셨다. 하얀 한지로 둘둘 말려 있고 빨간 끈으로 리본이 묶여 있었다. 풀어보니

새하얀 미사보가 들어 있었다. 주말에 친구 약속이 있어서 명동에 갔다가 내 생각이 나서 명동성당에서 샀다고  하셨다. 평소 내게 선물을 주는 엄마가 아닌데, 생각지도 못하게 미사보를 선물해 주셔서 깜짝 놀랐다.

딱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었다. 자잘한 꽃 자수가 촘촘히 미사보를 채웠다. 자수실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무게감도 있었고 단단했다. 질이 꽤 좋아 보였다. 마음에 쏙 들었다.

'선물은 괜찮잖아!'

선물은 내가 죄책감 가질 필요가 없었다.  갖고 싶었지만 사지 못했던 걸 선물로 받았다.  위시리스트에 적었고 마음으로 원해서 이루어진걸까. 새로운 미사보는 못 사겠다 생각했는데 내 두 손에 들어왔다. 게다가 엄마에게 받은 미사보이다. 더욱 소중하다.  앞으로 누런 손때 탈 때까지 평생 함께 할 미사보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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