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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작가 Nov 20. 2023

생애 첫 마라톤일 뻔했다.

나는 계속 달린다.


2023년 11월 19일 일요일. 손기정평화마라톤 10km

태어나 처음으로 참여하는 마라톤일 뻔했다. 결국은 마라톤 못 했다는 뜻이다.

택배로 미리 받은 마라톤 유니폼과 배번호, 사은품


8월에 3km를 시작으로 5km, 6km, 지난주에 8km까지 꾸준히 거리를 늘리며 훈련해 왔다. 그리고 대망의 마라톤 대회를 며칠 앞두고 감기 몸살에 걸렸다. 기침이 계속 나왔고 목도 아팠다. 38도 이상 열이 나면서 온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몇 시간 못 버티다가 병원에 갔다. 주사 맞고 약 먹었으니, 2~3일이면 낫겠지 싶었다. 마라톤은 당연히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주위에서는 이런 몸으로 어떻게 마라톤 나가냐고 안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몇 달 동안 준비했는데, 마라톤 안 나가면 이후 내 마음이 어떨 것 같아요?"

목표를 세워 놓고 도전조차 못 했을 때의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생각만 해도 싫었다. 



'마라톤 10km'는 2023년을 장식하는 올해 마지막 도전이자 목표라고 생각했다. 매주 아침 졸린 눈 비비며 일어나서, 공원을 헉헉 대며 몇 바퀴씩 뛰었다. 달리다 보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아파왔다. 멈추고 싶고 주저 않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목표한 만큼 달리고 난 뒤 돌아오는 성취감과 뿌듯함은 엄청났다. 달리면서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매우 좋았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신경 쓰이던 일들이 풀려나갔고, 의기소침했던 부분에서는 자신감이 생겼다. 달리기, 마라톤 중독이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분명 매력 있는 운동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조건 마라톤 나가겠다는 마음이 흔들렸다.

생각만큼 몸 회복이 빠르지 않았다. 괜찮아지는 듯싶더니 이틀 후 다시 열이 났다. 온몸이 아래로 푹 꺼지는 듯 힘이 하나도 없었고 계속 잠이 왔다. 

'안 되겠구나...' 


같이 마라톤 뛰기로 한 지인에게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곳에 살지만 매주 이른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각자 집 앞에서 같은 거리를 뛰었다. 그렇게 몇 달간 함께 훈련을 해왔는데, 같이 못 나가게 되어서 정말 미안했다. 함께 마라톤 10km를 달리면 서로 엄청 가까워진다고 누가 말해줬다. 힘든 순간 함께 극복하고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목표까지 함께 도달하는데, 안 가까워질 수가 있을까. 내가 못 가는 것도 속상했지만 같이 있어주지 못한 게 참 미안했다.


마라톤 당일에도 나는 집에서 잠에 취해 있었다. 핸드폰 옆에 끼고 자다가, 10km 완주한 지인이 보내온 카톡 사진 보며, '저기에 내가 있어야 되는데...' 아쉬워하며 또 바로 잠들었다. 마라톤 나가면 안 될 몸이 맞긴 했나 보다. 하루 종일 정신 못 차리며 잔 걸 보면 말이다.

마라톤 당일이 되면 엄청 속상할 줄 알았는데, 잠자느라 힘든 마음 없이 잘 지나갔다. 

꼭 대회에 나가야지만 마라톤인가. 내가 몇 달간 매주 뛰었던 것도 나만의 마라톤이었다. 나는 매 순간 내가 정해놓은 목표를 향해 달렸고 이루었다. 그리고 매번 기분이 좋았다. 이미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러 겹으로 누적된 성취감이 있다. 이번 대회에 못 나가도 괜찮다. 올해는 좀 쉬라는 뜻인가 보지. 내년에 마라톤 대회 나가면 된다. 시간은 많고, 대회도 앞으로 쭉 널렸다. 


집 앞에서 혼자 달릴 때의 느낌이 참 좋다. 내가 바퀴가 되어 앞으로 쭉쭉 굴러나가는 것 같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조금만 더 힘내자고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다 뛰고 나면 잘했다고 내가 나에게 칭찬해 준다. 누구의 방해도 영향도 없으며 오로지 내가 주최가 된다. 나 자신이 좀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 든다.

더 단단한 내가 되기 위해 나는 계속 달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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