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글쎄, 당신을 알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첫울음을 터뜨리던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서툰 입 모양으로 아빠라는 단어를 흉내 내던 순간이었을까. 아무튼간에 당신은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내 삶에 들어와 가장 큰 부분을 당연하게 차지하고 있다.
유치원에 다닐 땐 아빠가 무서웠다. 투정 부리거나 잘못을 하면 벌을 서거나 엉덩이를 맞았는데 그럴 때면 아빠가 꼭 도깨비로 변신을 한 것만 같았다. 천벌같이 무시무시한 혼쭐을 당하고 혼자 구석에서 조용히 울고 있으면 아빠가 다시 와서는 꼭 안아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차피 안아줄 거면서 혼은 왜 내는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5분 전까지만 해도 도깨비 같던 아빠의 변신이 무서워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하고 꼭꼭 씹어 소화시켰다.
학생 때는 아빠가 낯설었다. 바쁜 일 때문에 자주 얼굴을 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항상 신경이 날카로워 있었다. 엄마랑 크게 싸우는 날이면 동생과 방에 들어가 쥐 죽은 듯이 눈치를 봤고 그날은 온종일 집안이 싸해지는 하루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드라마 속 비운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서도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날에는 매번 치킨 같은 걸 사와 잠에든 나를 깨웠다. 그럼 자는 애를 왜 깨우냐며 말리는 엄마의 목소리와 잠에서 억지로 깨 짜증이 나면서도 고소한 후라이드 냄새를 맡고 입맛 다시던 그때의 비몽사몽한 풍경이 떠오른다.
한때는 마냥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아빠와의 거리가 가까워진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딱히 무슨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도깨비 같은 화를 내면서도 나를 꼭 안아주던, 바쁜 일에 치여 살면서도 술에 취한 퇴근길의 목적지가 치킨집이 되었던 서툰 그 시절의 아빠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었을 뿐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아빠가 내 삶에 스며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내가 기억도 안 나는 나의 유년시절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잘못된 길로 들어 설까 두려워 더 무섭게 화를 내는 사람이고 덕분에 가장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보다 단지 몇 걸음 앞서가고 있는 남자이자 잔병치레가 조금 많은 아저씨일 뿐이다. 보일 듯 말 듯한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빠는 참 크면서도 작다. 도깨비 같아 보이던 근육은 병정 인형처럼 메말랐고 어느새 주름과 검버섯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난 앞으로 점점 더 커지고 싶다. 점점 더 커져서 점점 더 작아지는 당신의 뒷모습을 두 팔로 가득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