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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Nov 26. 2021

어머니와의 약속

처음이었던 딸의 길

요 며칠동안 읽었던 브런치 작가님들의 여러 글에서 어머니가 보였다. 시간이 가면 세상사 슬픔도 기쁨도 무뎌져 가더라. 그러나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서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내 감정이 무뎌지질 않는다. 어머니가 그리운 날에는 저 높고 맑은 하늘에도, 내가 읽고 있는 책 안에도,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에도 어머니가 계신다. 어머니와 눈을 맞추고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은 기억의 먼지가 수묵히 쌓여도 가슴 한켠에 오롯이 남아있다.


미국의 대법관을 지낸 올리버 웬델 홈즈 주니어 (Oliver Wendell Holmes Jr.)는 젊음과 사랑이 시들고, 우정이 멀어져도, 어머니의 은밀한 희망은 모든 것들보다 오래 지속된다고 했다 (Youth fades, love droops, the leaves of friendship fall; A mother's secret hope outlives them all). 자식들을 향한 어머니들의 희망과 사랑의 영원함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어머니께서 살아생전 어머니의 길이 처음이셨듯 나도 딸이라는 길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 다시 그 딸의 길을 간다면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는 몰라서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았고, 보이는 것들조차도 그 의미를 잘 몰랐다. 처음 딸의 길을 걷는 나의 딸을 보고서야 나는 어머니를 더 알아가게 된다. 이제야 어머니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나는 다시 그 딸의 길을 갈 수가 없다.


내가 어머니께서 원치 않는 결혼을 할 때도 어머니는 나의 선택을 믿는다며 축복해주셨다. 내 딸아이가 나와 같은 선택을 한다면 나도 딸아이를 기꺼이 축복해줄 수가 있을까? 결혼식 날 아침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셨던 어머니를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속으로만 많은 약속들을 했다. 내가 이민을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날도 어머니는 더 기쁜 재회를 위해 기다리겠노라고 더디게 말씀하셨다. 휑한 어머니 두 눈에 와락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이 깊게 고여있었다. 나는 이때도 어머니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속으로만 많은 약속들을 했다. 고여있는 어머니 눈물이 쏟아질까 봐 어머니를 한 번 안아드리지도 못했다.


2017년 7월 23일 후덥지근 달아오르던 그 여름의 중심에서 어머니는 83년 간의 노곤한 여정을 마치셨다. 나는 어머니 생전에 많은 약속들을 했지만 어느것 하나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드려야 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며 나는 또 약속을 했다. 이번에는 어머니의 흐린 눈을 보며 "엄마. 엄마가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도 제 자식들에게 좋은 엄마가 될께요” 라고 했다. 이번에는 어머니와 한 약속을 지켜려고 노력 중이다. 좋은 어머니로 성장해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나의 어머니를 통해 배운 것이 많으니 내게 어머니의 길은 내가 걸었던 딸의 길보다는 조금은 덜 낯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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