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에게 가족이란? 사랑이란?
가족은 누구에게나 특별하고 소중하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나라에 와서 사는 이민자들에게 가족은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우리' '함께'가 중요하지만 개인주의가 철저한 캐나다에서는 개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 이런 개인주의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민 생활이 외롭다고 토로한다. 그런데 가족들 간의 관계까지 원만하지 못하면 더더욱 외롭고 힘든 이민생활이 된다.
가족들과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땅에 왔지만 오히려 더 불행해지는 가정도 많다. 한국에서 산다고 모든 가정이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배워가며 뿌리를 내리는 이민자들에게 가족이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 같은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 울타리를 지켜나가기에는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이제는 캐나다에서 살아온 시간들이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한국에서의 시간보다 더 많아진다. 어릴 때부터 즐겨 먹던 한국 음식이나 학창 시절 들어왔던 유행가 같은 추억이 담긴 것들을 제외하고는 캐나다 문화나 사고방식이 더 편할 때가 많다. 성인이 되어 내가 추구하는 인생관이나 가치관의 많은 부분들이 캐나다라는 세계에서 더 영글어지고 익어갔다. 하나하나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고 깨우쳐갈 때고민했고 때론 아팠다. 아파하면서 어른으로 성장하고 여물어 갔다.
나는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은 전형적인 한국 남자를 남편으로 두었고.
만 두 살 때 이민 와서 자기가 태어난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딸이 있고.
이곳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한국 문화와 교집합이 거의 없는 아들이 있다.
이 가족 구성원들은 때론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며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 되기도 하고, 때론 배려 없는 행동들로 나를 불쾌하게도 하며, 때론 날카로운 언어들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구성원들은 죽었다 깨나도 가족이 소중하단다. 이 가족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럼 나는? 나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리고 아내라는 이름과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을까? 남편과의 다툼의 끝에는 툭하면 이혼이란 말로 그를 협박하고 아이들에겐 의견을 물어보는 시늉만 했지 아이들의 의견을 진심으로 존중하거나 실천하지 못했다. 나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이들을 사랑한 것이다.
내년이면 남편과의 결혼 30주년이 된다. 세상모르고 꿈을 꾸던 내가 어느새 염색하지 않으면 하얀빛 머리가 절반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가족이 내겐 큰 재산이기도 하고 때론 큰 짐이 되기도 하며 그렇게 함께 한 시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한다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