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을 때 더 열심히 사랑하자.
난 요새 그룹 몽니가 부르는 '슬픈 베아트리체'에 빠져있다. 몇 달 전에 친구가 들어보라며 유튜브 영상을 보내왔다. 누구 노래이고 누가 부르는지 생각 없이 한 번 들은 후에 "좋네. 땡큐!"라고 답신을 한 후 잊고 있었다. 그런데 YYMassart 브런치 작가님의 '단테의 <신곡>을 펼치면 상상할 수 있다'라는 글을 읽으면서 불현듯 이 노래가 생각났다. 다시 들어보려고 했으나 다른 일을 하다 깜박하고 잊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hun 작가님의 '괜찮았던 이별이 어디 있나요'라는 글을 읽을 때 묘하게 이 노래가 또다시 듣고 싶어졌다. 그리고 다시 들었을 때는 감동으로 밀려왔다.
이 곡은 가수 조용필이 작곡하여 1992년 나온 곡이다. 그런데 2020년 불후의 명곡 상반기 결산 특집 편에서 밴드 몽니가 이곡을 열창했다고 한다. 가수마다의 특색이 있어서 누가 노래를 더 잘한다고 평할 수는 없지만 나는 몽니가 편곡한 이 버전에 퐁당 빠져 버렸다.
이 노래는 곡도 좋지만 작사가 곽태요에 의해 만들어진 노랫말 역시 한 편의 시다. 작사가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단테가 사랑했던 베아트리체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베아트리체는 이탈리아 작가 단테가 평생을 두고 사모한 여인이다. 단테는 9살 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일생동안 딱 두 번 만난 그 여인을 평생 짝사랑했다. 베아트리체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으나 요절하게 된다. 단테는 대서사시 신곡에서 베이트리체를 사랑하는 연인만이 아니라 구원자로 설정하고 있다. 단테는 연옥을 통과하고 천국에 도달하기 앞서 그의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와 만난다. 단테는 베이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으로 가며 궁극적인 구원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내가 이따금씩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는 버릇 중에 하나가 무엇에 잠시 깊게 빠지는 것이다. 그것이 공부든, 노래든, 물건이든, 사람이든 간에... 한 가지에 오랫동안 깊게 빠지면 한 분야에서 벌써 대가가 됐을 텐데 안타깝게도 잠깐만 빠지니 대가가 되지 못했나 ㅋ... 물건이나 사람에게 깊게 오랫동안 빠졌다면 아마도 폐인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다행히도 항상 아주 이따금씩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만 빠졌다가 헤엄쳐서 쏘옥 나온다. 예를 들어 하나의 노래에 끌리면 그 노래를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수 십 번, 수 백 번을 듣는다. 옛날처럼 카세트테이프로 듣는다면 아마 그 노래 테이프가 이미 늘어지고 끊어질 판이다. 몽니의 슬픈 베아트리체 유튜브 비디오 조회수가 최근 많이 늘었다면 나의 공로가 클 것이다.
몽니라는 밴드를 몰랐다가 친구가 보내 준 유튜브 비디오를 보고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이미 꽤 알려진 밴드였다. 몽니의 버전은 시원한 가창력만이 아니라 보컬 김신의의 맑은 음색도 좋다. 이 보컬이 노래하는 모습은 군데군데 격정적인 블랙커피의 향이지만 처음과 끝은 언제나 달콤한 라떼의 유혹이다. 그의 다양한 표정이 노래 가사와 딱 맞아떨어진다 (알고 보니 그는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네... 어쩐지... 표정이 살아있다 생각했음). 그리고 그 뒤에 받쳐주는 연주도 부드럽다.
몽니가 3분 25초 언저리 후렴 "나의 사랑이여"라고 반복하는 부분은 몽니 버전에서만 들을 수 있는 부분이다. 보컬 김신의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한 사람을 평생 사랑한 애절함이 그래로 묻어난다. 특히 '꽃상여에 그댈 보내며'는 베아트리체의 이른 나이의 죽음을 연상케 한다. 어찌 '꽃상여'라는 딱 들어맞는 낱말을 찾아냈을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났을 때의 상실감이 여기저기에 뚝뚝 묻어난다.
지구 상에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떠난다. 누가 먼저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보다 먼저 떠나면 그 외로움은 남아있는 나의 몫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슬프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더 절절하고 애잔한지도 모른다. 애잔한 그리움도 우리가 살아 숨을 쉬고 기억하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이다. 내가 먼저 떠나면 나도 나를 사랑했던 그 누군가의 베아트리체가 된다. 먼저 떠난 베아트리체가 슬픔으로 남지 않도록 살아있을 때, 기회가 있을 때, 더 열심히 사랑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쌓아가야 하지 않을까?
몽니 버전 가사를 여기 옮겨본다 (원곡 가사와 아주 쬐끔 다름에 주의)
그대 슬픈 눈에 어리는
이슬처럼 맑은 영혼이
내 가슴에 스며 들어와
푸른 샘으로 솟아나리니
그대 여린 입술 사이로
바람처럼 스친 미소가
나의 넋을 휘감아도는
불꽃이 되어 타오르리니
슬픈 그대 베아트리체
아름다운 나의 사랑아
빈 바다를 헤매는 내게
살아야 할 단 하나의 이유 되어
사랑이란 소망의 섬
그 기슭에 다가갈 수 있다면
사랑이란 약속의 땅
그 곳에 깃들 수만 있다면 (몽니는 이 부분에서 길게 뺐다 ~ 아쿠 좋타아!)
슬픈 그대 베아트리체
떠나버린 나의 사랑아
꽃상여에 그대 보내며
살아야 할 이유마저 없으니
사랑이란 절망의 벽
울부짖는 통곡마저 갇힌 채
사랑이란 배반의 강
간절한 언약마저 버리고
워어 ~ (맑으면서 담백한 끝처리도 아주 맘에 듬)
나의 사랑이여 (이 부분은 몽니 버전에서만 들을 수 있다)
나의 사랑이여
나의 사랑이여
나의 사랑이여
나의 사랑이여
나의 사랑이여 (여섯 번이나 하고 끝냄)
워어 ~
사랑이여 불멸의 빛
거짓 없는 순종으로 그대를
사랑이여 사랑이여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워어 ~
사랑이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이번에는 다섯 번만 하네여)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캬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