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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Dec 28. 2021

화이트 크리스마스

함께한 행복

2022년 캐나다 밴쿠버의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어린 시절 즐거움과 설렘을 주던 포근했던 하얀 꿈가루는 어느새 쌓인 눈을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과 길이 미끄러워 운전을 염려해야 하는 근심 덩이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전날부터 갑자기 온도가 뚝 떨어지고 눈이 오기 시작하자 남편은 내내 걱정이 태산이었다.


오타와에서 오기로 했던 아들이 갑자기 배탈이 나서 출발이 며칠간 미뤄졌다. 크리스마스 전날 아침까지도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오미크론 상황이 심각해서 캐나다 국내 여행도 불안한 데다가 눈까지 오기 시작하자 남편은 아이들이 차라리 오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안전하게 연말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족이 올해도 함께 모이지 못할까봐 내 속은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심란하고, 우울하고, 허전하고 뭐 그런 애매한 감정들로 눈이 오는 창문을 연실 바라봤다. 눈송이가 굵어질수록 나의 근심의 무게도 늘어났다.  


그러다 크리스마스이브, 밤늦게 아들이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 부부는 아들을 픽업하러 공항으로 나갔다. 굵어진 눈발과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이 밴쿠버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제법 낭만적으로 만들었다. 남편은 눈길을 달리며 안전운전에 집중하느라 말이 없었다. 나는 아들을 보게 된다는 기쁨과 휘날리는 눈발이 주는 멋스로움에 설레었다.

아 행복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나 보나!


아침에 눈을 뜨니 주변에서 눈 치우는 소리들이 들렸다. 밤새 눈이 수북이 쌓인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아버지와 아들은 밖에서 눈을 치우느라 분주했다. 아버지는 집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산타 모자를 쓴 아들은 집 앞 골목을 치우고 있었다. 집 앞 도로에는 옆집, 앞집 이웃집 남자들이 나와서 함께 골목길을 치우고 있었다. 성격 좋고 재미난 우리 집 아들이 옆집 남자들과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떨어가며 눈을 치우는 모습을 보니 아들이 다 큰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가 오후에 도착하기로 되었는데 눈은 치워도 다시 또 쌓였다. 크리스마스 날까지도 일해야 하는 직원들을 위해 케이크와 과자를 만들어주고 올 계획이라며 딸아이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다고 했다. 항상 남을 많이 배려하는 딸아이가 고맙기도 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때로는 좀 덜 했으면 싶을 때도 있다. 남을 위해 사는지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지 안타까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내 딸보다 더 이기적이라서 이런 맘이 드는 것 인정!). 오후에는 더 많은 눈이 온다고 하니 딸아이가 집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하나도 편할 수가 없었다. 부모는 걱정으로 시작해서 걱정으로 끝나나 보다.  


오후 늦게 딸아이가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푸근함과 행복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코로나로 2년 만에 다 같이 모인 네 사람은 서로가 준비한 선물들을 교환하고 간식거리를 위해 함께 만두도 만들고, 찹쌀 도넛도 만들고, 김밥도 만들었다. 남편은 쌓여가는 쓰레기를 치우느라 들락날락거렸다. 이것저것 쓰레기들이 많이 생겨도 남편은 내내 즐거워 보였다. 부모에게 자식은 선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딸아이가 아빠에게 나이가 들수록 머리를 써야 한다며 코스트코(Costco)에서 500개짜리 퍼즐 선물을 하였다. 남편은 눈이 침침해서 그런 거 하다 도리어 스트레스 받게 될 수 있고 건강에 해로울 수 있으니 앞으론 그런 선물 지양해달라고 했다 ㅎㅎㅎ. 그리고 그 선물은 내 차지가 되었다. 우리 삼인방(딸, 아들, 그리고 나)은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퍼즐을 맞춰나갔다. 필요한 조각을 못 찾으면 눈에 힘을 주고 모든 퍼즐 조각이 다 똑같이 보인다며 불평했다. 하나하나 공간이 채워질 때마다 우리는 즐거워했고 그렇게 해서 몇 시간 만에 퍼즐을 완성했다. 거창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어가고 이루어가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모레면 두 아이들이 다시 자기의 자리로 돌아간다. 내일은 무엇을 하며 같은 공간에서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는 밤이다. 아이들이 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 집을 떠났으니 이렇게 짧게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들이 한두 번도 아니련만 나는 아직도 이런 만남과 헤어짐이 어렵고 익숙하지 않다. 아이들이 머물다 떠난 공간에서 '또다시 만날 그때'라는 전차를 기다리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겠지. 며칠간 허전한 마음을 채우고자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밀린 일들을 정리하며 무척 바쁜 척 부산을 떨 것이다. 2021년 행복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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