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헤어짐 후에
여름휴가나 연말에 아이들이 방문하여 짧은 시간 머물다 간 그 기억들은 나를 힘들게 한다. 함께 있을 때는 꽉 차 있던 마음이 공허함과 허전함으로 세상이 온통 흐리기만 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각기 다른 이유로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은 참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이 남긴 빈자리가 익숙해질 때까지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이전보다 더 바쁜 척 부산을 떨고, 사람 만나는 일에 인색하지 않으며, 남편과의 대화에 밀도를 더하려고 한다. 글을 쓴다고 책상머리에 앉지만 정작 유튜브에서 나오는 우울한 노래에 빠지고, 굳이 집중해서 영어를 해석할 필요가 없는 한국 영화를 밤늦도록 보고, 공연히 죄 없는 냉장고 문을 종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남의 집을 염탐하듯 조심스럽게 거실을 기웃거리며 허전한 맘을 달랜다. 그래도 그 빈 공간이 채워지지 않으면 엄지 손가락이 얼얼해질 때까지 이방 저방 카톡방을 다니며 허당 유머를 날리고 저녁 식사를 양~껏 하여 초저녁부터 졸다가 그렇게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많아진다. 폐인이 되기에 딱 좋은 과정들이다.
그러다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고 나를 위로하고 추스른다. 한 일주일 정도 지나고 나면 아이들이 없는 집안이 더 편하고 저녁이면 아이들이 몇 시에 들어오나 하는 이런 작은 것들에 신경 안 써서 좋은 한가한 일상에 감쏴~해 하며 냉장고 문을 여는 횟수가 급속히 줄어든다. 퇴근길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는 날이 많아지고 집은 저녁에 잠만 자러 가는 하숙생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싱크대에 빈 컵들이 며칠씩 뒹굴어도, 빨래통에 빨랫감들이 넘쳐서 더 이상 쌓을 공간이 부족해도 난 미루고 미루다 결국 주말 마지막 언저리에 세탁기를 돌리며 ‘그동안 난 너무 열심히 살았다. 계속 열심히 살면 말이 안 된다. 이제는 게을러도 괜찮고 게으르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고 나 자신을 격려한다. 그러나 이런 여유로움도 잠깐이다. 한 사나흘 지나면 나는 나의 게으름과 여유로움에 불안해진다. 뭔가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다시 생각을 하고 계획을 짜고 나를 들볶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시 방문할 때까지 남겨진 빈 공간을 꾸역꾸역 무엇인가로 빼곡하게 채워간다.
아이들이 커서 각자의 성장을 위해 부모 곁을 떠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업을 위해 타 지역으로 멀리 떠나간 처음 몇 년 동안 나는 많이 방황했던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엠티 네스트(empty nest) =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천천히 고민하기보다 무조건 그 허전한 공간을 무엇인가로 메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많은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기도 하고 감정의 소모가 많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남기고 간 공간을 조금 천천히 그리고 느리지만 여유를 가지고 채워갔더라면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값진 시간들이 되었을 텐데 난 물리적으로 날 더 바쁘고 번잡하게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한 의미 있는 일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나와 큰 상관도 없는 많은 일에 욕심을 부렸다. 아이들이 나에게 선물한 ‘오롯이 나만을 위한 그 소중한 공간’을 별 쓸모없는 잡음들과 허접한 모습들로 채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으면 이제는 조금 더디게 그렇지만 지혜롭게 살 절호의 기회였는데 난 느리다는 것, 제약이 있다는 것, 부족하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뒤처짐이 두렵기보다는 여유를 주고 앞에서 빨리 달릴 때 보지 못했던 것을 더 많이 보게 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분주함 대신 찾아온 여유로움이라는 손님이 낯설었다. 늘 바빠야만 ‘나’ 다운 모습으로 오랜 시간 길들여져 있던 나는 다음 발을 내딛기 위해 잠시 주저하는 내 모습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없는 빈 공간에서 난 아이들이 지나고 간 사춘기를 그렇게 소리 없이 앓고 있었다. 그 빈 공간에서 나도 말로만 듣던 갱년기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갱년기가 황금기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내가 가진 빈 마음의 공간을 더 넓혀야 한다. 그 마음의 공간은 클수록 더 좋다.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을 만나면 말만 많아지고 요란해진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많은 물건들에 욕심을 내면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삶이 점점 무거워지기만 한다. 버리지 못하면 다른 것을 채울 수가 없다. 공간이 있어야 더 좋은 것, 더 지혜로운 것, 더 감사할 것들을 채울 수 있다.
살면서 맞이하게 될 수많은 크고 작은 이별과 슬픔에도 담담하고 차분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타인의 잡음으로 가득한 분주함은 후회와 아쉬움만 남는다. 내가 사랑하는 후배 한 명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준비된 이별과 준비된 슬픔을 대하고 싶다고…”
이제는 아이들이 남긴 그 소중한 공간에 아무것이나 무조건 꾸겨 넣고 싶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좀 천천히 생각하고, 느리게 걸으며, 다음 발을 지혜롭게 내딛고자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작은 헤어짐 뒤에도 좀 더 준비된 모습으로 그 빈 공간을 멋지고 세련되게 채워가고자 한다. 물론 나만의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