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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Dec 03. 2021

고양이와의 비밀 데이트

동물에게서 받는 위안과 사랑

매일 밤 10-11시 사이 남편의 샤워하는 물소리가 나면 아래층으로 사뿐사뿐 내려오는 콜튼의 발자국 소리가 어김없이 들린다. 그리고 "야옹"하며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물소리가 멈추면 내 무릎이나 배 위에서 잠시 머물던 콜튼은 귀를 세우고 다시 자기 잠자리로 돌아간다. 남편은 오래된 우리 둘 사이의 비밀 데이트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콜튼에게 밥을 주고 물을 바꿔주고 콜튼의 응가를 치우는 일은 남편의 몫이다. 남편은 콜튼에게 잘하지만 딱 두 가지는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콜튼이 침대에 올라온다든지 내 무릎에서 오래 머무는 것이(내가 먼지 알레르기가 있다는 이유로) 들통나면 남편의 목소리는 여지없이 "콜튼!" 하고 높아진다. 이때 콜튼은 내빼기 바쁘다. 


콜튼이 우리 가족이 된 것은 15년 전이다. 아이들이 개나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고 조르던 차에 오래된 우리 집 안으로 쥐가 들어왔다. 지금은 밴쿠버에도 구조된 고양이들을 보호하는 캣카페도 있고 Craiglist 나 Kijiji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분양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유일한 방법은 BC 유기 동물 보호소(The British Columbia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BC SPCA라고 줄여서 말함)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요즘은 코비드 때문에 반려동물을 입양하기가 쉽지 않아서 SPCA 신청서를 온라인으로 작성하고 몇 달이고 기다려야 기회가 온다. 그러나 그때는 유기 동물들이 많아 SPCA를 직접 방문해서 입양을 원하면 그 자리에서 신청서를 작성한 후 반려동물을 바로 데려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쑥스러운 일이지만 신청서에 고양이를 왜 입양하려 하느냐 이유를 '집에 쥐가 있어서 쥐를 잡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담당 직원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게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물었다. 그 이유가 다냐고. 그래서 나는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서 살을 붙였다. 아이들이 고양이를 원한다. 가족처럼 잘 보살피겠다고 했다. 내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때 그 정도 수준이었다. 


콜튼은 이전 주인에게서 한 번 가출을 했다고 했다. 그 뒤 콜튼이 발견되었으나 이전 주인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콜튼을 다시 받아들이길 원치 않았다고 한다. 입양 당시 콜튼은 최소 3-5살 이상은 된 것 같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콜튼의 정확한 생년월일을 모른다. 


우리가 콜튼을 처음 봤을 때 이미 어른이 된 콜튼은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서 몸집이 상당히 커서 놀랐다. 덩치는 컸지만 집안에서는 점잖고 온순했다. 그러나 밖에만 나가면 쌈닭이었다. 원래 수고양이들은 자기 영역(Territorial)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고양이건 개건 우리 집 마당에 발을 부치면 달려가 공격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니던 동네 고양이들이 콜튼 눈에 띄기만 하면 줄행랑을 치기 바빴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덩치 건장한 힘센 한 놈이 나타난 것이다. 그때부터 난 콜튼 바라기가 되고 콜튼은 나의 보디가드가 되었다. 


콜튼은 우리 집에 와서 딸 아들이 사춘기를 지나고 대학을 가기 위해 집을 떠날 때까지 우리 부부와 함께 아이들을 키웠으며, 매일매일 집안 구석구석을 점검하여 우리를 쥐의 공격으로부터 막아준다. 집안에 손님이 오면 자신의 방법으로 몸수색을 시작한다. 손님의 다리와 발 냄새를 맡고 자리를 뜰 때까지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귀를 세우고 모든 대화에 귀 기울인다. 


어느 주말 내가 과외수업을 해주던 한 학생이 내게 물었다, "가정이긴 하지만 선생님, 혹시 콜튼을 십억 드린다고 하면 파실 수 있으세요?" 일억도 아니고 십억이라... 나는 재미로 내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노라 "너희들 생각은 어때"라고 물었다. 내게 돌아온 대답은 "엄마, 누가 십억 준다고 하면 저희 팔 거예요?"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콜튼을 가족이라 말하면서도 동물은 필요에 따라서 팔 수 있거나 버릴 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있구나를 깨달았다. 어린 아이들에게 그런 장난 질문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와 가까운 캐나다인 친구들은 내 두 아이들의 안부를 묻기 전에 콜튼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 왜냐하면 내가 콜튼에 대해 얘기를 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콜튼 때문에 감동한 얘기를 하면 그 친구들은 단편 소설을 읽는 기분이란다. 난 소설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다큐멘터리를 들려주는 것인데 말이다. 


콜튼이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박사논문 마무리를 하는 중이었다. 그때는 학교에서 오전에 강의도 하고 풀타임 일도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먹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논문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식구들은 위층에서 자고 나만 혼자 아래층에서 새벽까지 남아있으면 으쓱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화장실 가기가 겁나기도 하고 오래전에 봤던 무서운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나이와 두려움은 관계가 없나 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콜튼이 나와 함께 했다. 밤마다 내 컴퓨터 옆에서 내가 하루를 마감할 때까지 곁에 있어주었다. 어느 날은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어느 날은 코를 골며 자기도 하고, 어느 날은 키보드로 가는 내 손을 잡아당기며 일을 끝내라고 재촉하기도 하고 그렇게 내 논문이 완성될 때까지 내 보디가드는 나를 밤마다 지켜주었다. 숨을 쉬는 동물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지 콜튼과의 동행으로 알게 되었다. 


하루는 아들 녀석이 본인이 아끼는 이어폰을 잃어버렸다고 온 집을 뒤지고 다녔다. 캐나다는 단독주택을 나무로 짓지 때문에 새집에 아주 큰 집이 아니면 집안에서 웬만한 소리가 다 들린다. 아들은 위층 아래층을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집안 곳곳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았다. 아래층에 있는 내 서재를 몇 번이고 찾아와서 두리번거리고 씩씩거리다 다시 올라갔다. 아들 방에 가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어젯밤 잠자기 전까지 이어폰을 썼단다. 그러니 다행히 밖에서 잃어버린 것 같지는 않고 본인 방에 있을 것 같았다. 아들은 자기 방 모든 곳을 다 찾아보았으나 헛수고라며 짜증을 냈다. 그때 콜튼도 나를 따라 아들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짜증 난 아들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콜튼, 형이 이어폰을 잃어버렸데. 어딨는지 좀 찾아볼래?"라고 말했다. 상심하는 아들에게 정 못 찾으면 다시 사주겠노라고 위로를 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콜튼이 아들 이어폰을 물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아들은 "콜튼 고마워!"를 연거푸 내뱉으면서도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딸아이가 제출해야 할 중요한 학교 숙제를 잊고 갔단다. 딸아이의 컴퓨터 안에 파일을 열어 프린트를 해야 하는데 딸아이의 컴퓨터 패스워드를 모른다고 말이다. 나도 모르지 딸아이 컴퓨터 패스워드를 어찌 안단말인가. 딸아이는 아빠를 기다리다 쉬는 시간에 학교 전화로 다시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필요한 패스워드 (꽤나 복잡한 패스워드 조합이었다고 함)를 알려 주었는데 남편은 따로 적지 않고 전화를 받은 채 키보드를 쳐서 딸아이 컴퓨터 파일을 찾아냈다. 그리고 출력 키를 눌렀다고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컴퓨터가 먹통이 되었단다. 급한 마음에 컴퓨터를 작동시키려고 껐다 다시 켜고 보니 아까 패스워드가 기억나질 않더란다. 이런저런 조합을 다 해보고 애가 타고 있는데 그때 콜튼이 갑자기 프린터 위로 점프를 했다. 프린터 위로 점프를 하면서 어느 키를 눌렀는지 어쨌든 갑자기 프린터가 소리를 내며 딸아이의 과제물을 뽑아냈단다. 내가 어떻게 되었나 확인차 남편에게 전화를 했을 때 남편은 "하, 나, 참, 콜튼이 말이야" 하면서 여전히 흥분한 기력이 역력했다. 


콜튼은 올해로 최소한 18-20살이 되었다. 사람 나이로 하면 90세가 넘은 것이다 (고양이 1살은 사람 15세, 그다음은 9년씩 더함으로, 고양이 2살은 15+9살 = 사람 나이 24살, 고양이 20살은 사람 나이 96세). 얼마 전에는 변비로 고생하는 듯해서 병원에 갔더니 변비 빼고는 전체적으로 아직도 건강하다고 했다. 그래서 건식을 줄이고 습식을 늘리니 훨씬 편해 보였다. 이제는 옆집, 앞집 고양이들이 우리 집 마당을 빈번하게 드나들어도 지켜만 보고 있다. 어쩌다 한바탕 쫓아가는 일이 생기면 그 후에 지쳐서 집에 들어와 널브러진다. 콜튼의 그르렁 거리는 소리에도 많은 날의 세월이 녹아있다. 그럴 때면 언제올지 모르는 이별 생각에 눈물이 난다. 콜튼은 이제 우리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이 되었다. 이제는 마당에 산책을 나갈 때도 내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콜튼을 지키는 보초를 선다. 혹시 젊은 고양이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도 있으니 내가 콜튼을 지킨다. 나의 보디가드는 젊었을 때의 기민함은 보이지 않으나 여전히 우아하게 걷고 있다. 내가 뒤에 따라오는지 한 번씩 뒤를 돌아 확인을 한다. 혹시 안 보이면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뒤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마치 강아지가 주인을 찾듯이. 


콜튼과 나는 서로 다른 언어로 많은 대화를 나눈다. 아침에 '굿모닝'으로 시작해서 밤에 '굿 나이트'할 때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묻고 각자의 방법으로 대답하고 반응한다. 우리의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는 다르지만 그 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같다는 것을 콜튼과 나는 안다. 내가 감기라도 걸려서 아프면 방문 안으로 절대로 들어오지 않고 방문 밖에서 꼿꼿이 앉아 내가 회복되기를 내내 기다린다. 내가 집을 며칠간 비우고 돌아오는 날에는 그 말랑말랑한 발로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쓰다듬는다 (그래서 얼굴 여러 군데가 가볍게 긁히기도 한다. 사랑을 받는 대가로 이 정도 상처쯤이야!).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 알람을 깜박했을 때에도 내 스케줄을 꿰차고 있는 듯 이른 아침 나를 깨워준다 (이 부분에서 내 친구들은 내가 소설을 쓴다고 한다). 남편이 주변에 없으면 침대 위로 훌쩍 뛰어올라와서 내 얼굴을 만지고 내 배 위에서 꾹꾹이를 하거나 내 귀에다가 "후후"하고 바람을 넣는다. 세상 어느 누구와의 인간관계가 15년 동안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다툼이 없는 만남이 있을까? 나를 이토록 사랑해주는 콜튼이 내 옆에 있는 것은 축복이다. 


오늘 밤도 남편의 샤워가 시작되면 콜튼은 사부작사부작 나를 찾아와 내 무릎 위에 앉아있다 가거나 내가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있으면 내 배 위로 올라와서 잠시 코를 골며 자다 갈 것이다. 그리고 물소리가 그치면 다시 조용히 위층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제서야 나도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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