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쓰죠?
문학관의 창작공간 이용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말한 지인은 많지 않다. 나는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인 걸까. 글을 쓴다는 게 부끄러운 걸까.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창작공간 이용 자격이 생겼다는 것을 알리면서 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는 어떤 걸 쓸 수 있는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언젠가 좀 오래된 이야긴데, 나한테 소설을 써보라고 쉽게 이야기한 지인이 있었다. 소설... 소설이라니.
만 21년 동안 은행원으로 규정 중심, 보수적 인간으로 사느라 창의성은 1그램도 남김없이 다 증발했다.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내가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볼 때가 있는데, 나는 상상마저도 도덕적이어야 한다.
만약 은행을 다니지 않고 창의적인 일을 하거나 창의를 요하는 직장에 다녔더라면 창의력이 계발됐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상상력이 틀을 벗어나지 못해서 오히려 소설 속 다양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상상력이 부족하고 고지식한 내가 복잡한 인간사를 쓰는 것도 어렵거니와 치밀하기는 더더 어렵다.
MBTI로 설명하자면 나는 SF(감각적, 현실적, 경험적, 감정적)이다. 소설가의 MBTI가 따로 있나 궁금해서 찾아봤다. 결과가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검색해 본 거였는데, 성격유형검사와 직업의 상관관계가 궁금한 사람이 또 있었다. 검색 결과, 유명 소설가 들은 NF(직관적, 이론적, 상상적, 감정적)가 많다고 한다.
나의 MBTI는 SF이지만 SF(과학기반) 소설은 잘 못 읽는다. 작가의 언어로 종이에 쓰여 있는 글을 읽으면서 그가 만든 세계관을 내 머릿속에서 입체적으로 공유하는 과정이 어렵다. 아니 귀찮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씨앗이 발아하여 나무가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의 상상력과 지적 충만함을 매우 존중하고 존경하지만 그 세계를 따라가기는 귀찮은 게으른 독자이다. 애초에 상상력이 미흡한 나는 종류가 뭐가 됐든, 소설 쓰기는 불가능하다고 써보기도 전에 결론이 나 있었다.
소설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에세이를 썼다.
퇴직 후 내가 놀지만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나는 지금의 내가 진짜 좋다>는 짧은 브런치 북을 만들었다.
종이 책으로 인쇄할 자신은 없다. 브런치북을 몰랐다면 종이책으로 갖고 싶었을 거 같은데, 지금 생각은 온라인 소장으로도 충분히 성취감이 있다.
이왕 쓰기 시작한 이상 뭐든 꾸준히 써보고자 한다.
지금도 대단히 잘 그리는 그림은 아니지만 처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그릴수록 나아지고 있다. 글도 그림과 비슷할 것 같다. 생각이 글에 묻어나는 거라 시간이 지나서 읽으면 좀 촌스럽고 부끄럽기도 하겠지만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써 본다. 쓰다 보면 사용하는 단어도 좀 더 늘어날 테고, 부드럽게 읽히는 글도 써지지 않을까.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이 활자가 되어 문장이 되고 문단이 되고 한 꼭지의 글이 되는 게 뭔지 몰라도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나의 지지자인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은 내가 그린 그림을 묶어서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그린 그림 이야기...
나에게 엄청난 용기를 주는 말이다.
다 그려놓고 보면 서툰 내 눈에도 부족함이 눈에 띄는 그림들이라,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잘 그린 그림은 아닐 거다. 하지만 내가 본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그 장면을 그리는 내 행복감. 그 행복감이 그림에 담겨 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동안 설레고 다 완성된 그림에 사인을 할 때의 성취감이 나를 계속 그리게 한다. 나는 내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다. 내가 가진 시간의 결과랄까....
가까운 지인들의 지지에 용기를 얻어 우선 매거진,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을 만들었다.
제주를 그린 스케치북 속 그림을 올릴거다. 한개씩. 한개씩. 그림이기 전에 사진을 찍을 때 마음과 그리는 동안 마음이 담긴 그림을 글로 다시 옮기면서 나는 또 행복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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