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은 옳다

서우봉 일몰지에서 바라보는 함덕바당

by 별썽

제주에 산지 9년 차.

나는 제주 바다는 다 가봤을까.

얼추 다 가봤겠지만 본 바다 또 봐도 좋고, 간 바다 또 가도 좋은 게 바다다.

제주 바다 중에 제일 좋아하는 바다라면, 나는 함덕이다.

함덕에 가면 늘 떠오르는 다섯 글자.

함덕은 옳다

어느 날이든 함덕에선 평화롭다.

맑고 쨍한 에메랄드 빛 바다를 봐도 그렇고,

비바람에 파도가 넘실대고 사나운 바람이 불어도 함덕은 옳다.


함덕에선 시간을 길게 써야 한다.

모래밭에 앉아 바다를 한참 바라보고, 바다가 잘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해야 하고, 해변을 따라 산책도 해봐야 한다.

그리고, 서우봉도 올라봐야 한다.

서우봉은 갈 때마다 산책로 시설도 바뀌고, 산책로 초입 바다가 보이는 꽃밭에 꽃들도 계절 따라 바뀐다.

서우봉 입구 정자를 지나면 여러 산책로가 나온다. 어차피 모르고 가는 길. 발길 닿는 대로 가 본다. 제주에서 배운 것 중에 하나라면 어디로 가도 좋다는 점.

서우봉을 오르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계속 바다를 봐야 한다. 한발 한발 오를 때마다 시선의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바다풍경이 정말 매력적이다.


서우봉을 오르다 오소록 한 곳에 벤치가 놓여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앉아서 멍 때리며 해지는 거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일몰지라는 이름이 있었다. 딱이네. 그 이름.


노을이 잔잔한 날 우연히 발견한 일몰지에서 바라본 함덕 바다는, 간결하게 아름답고 풍부하게 평화로웠다.

어쩌면 그날 노을이 대단했다면 주인공이 노을이 되었을 것이고, 함덕이 예쁜 걸 놓쳤을지도 모른다. 노을이 얌전해서 온전히 함덕 바다를 넋 놓고 볼 수 있었다.

사진으로도 찍어 뒀지만, 그날 내가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은 풍경에는 못 미친다.

그러나 사진을 보면 그때의 내 뭉클한 마음과 그날의 아름다움이 되살아 난다. 기록에 감동을 저장한 셈이다.



찍어둔 사진을 보고 바다를 그렸다. 그날의 하늘과 그날의 한라산, 그날의 도시(?), 그날의 습도와 추억을 그림에 담는다. 내가 찍고 내가 그리는 행위에서 오는 성취감.

내 서툰 그림을 볼 때마다 위축되던 나를 극복하고 꾸준히 그리고 있는 내가 기특했던 날이다.

지금 그리면 더 잘 그릴 수 있을지 몰라도, 난 그때 그린 이 함덕바다 그림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