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사냥

어떤 날의 환상. 수월봉 낙조

by 별썽
수월봉 산책로에서 바라본 일몰

제주에서의 노을은 어디서 봐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바닷가에서 보는 게 더 고운 색의 노을을 볼 수 있어 가끔은 해 지는 시간에 맞춰 남편과 함께 이호테우에 가기도 하고, 도두봉에 오르기도 한다.

서쪽 바다가 보이는 중산간 마을 카페에 가기도 했다. 모두 데이트를 가장한 노을 사냥이다.

가족 모두 각자의 일상에서 자신의 하루를 살던 어느 날, 혼자 저녁까지 보내야 했던 날이 있었다.

혼자 있자 하니 아무 일도 없는 그 하루가 무상했다.

노을 가까이에서 노을을 보고 싶었다. 노을을 보고 나면 아무 날도 아닌 하루가 아무 날도 아닌 게 아니게 된다(뭔 말인지, 암튼 좋다는 말이다) 나는 그렇다.

그래서 혼자 버스를 타고 제주박물관 앞에서 내려 사라봉에 올라 노을을 본 적도 있다.

노을이 시시하면 실망스럽기도 할 텐데, 풍월을 읊는 서당개가 된 건지, 그냥 언제나 노을은 예쁜 건지, 노을 사냥을 나간 날 노을이 시시했던 적은 아직 없다.

제주에 사는 동안 나는 ‘노을마니아’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노을을 보러 수월봉에 가자고 했다. 승용차로 한 시간 이십 분 거리다. 꽤 먼 거리지만 수월봉이라면 가줘야 한다.

아직 바람이 찬 2월이었고, 수월봉 바람은 더 차므로, 패딩을 입고도 담요를 챙겼다.

어느 초가을 수월봉에 노을 보러 갔다가 바람이 너무 차서 지는 해를 제대로 못 보고 돌아온 날이 있었는데, 그날의 아쉬움이 오래 남았었다.

그래서 단단히 준비하고 수월봉을 향했다.

이날 노을 사냥도 성공적이었다.

서쪽 바다 끝 수월봉은 해 지는 시간이 가까워 올 수록 진한 주황색이 되어갔다.

그 어느 해보다 묵직하게 느껴지던 태양.

노랗게 황금색으로 빛나다 하얀색 불덩이가 된 태양.

하늘은 짙고 파랗고, 파란 하늘 아래 주황색과 보라색, 남색 하늘.

해는 이내 붉고 검은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태양이 사라진 바다는 검은 바다가 된다.

제주에서의 노을은 어디서 봐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생각은 틀렸다. 어디서 봐도 크게 상관없지만, 수월봉이면 정말 좋다.

그날이 유독 더 예뻤는지도... 주변이 조용해서 더 찬란하면서도 무거웠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수월봉에서의 노을은 환상적이었다. 노을을 보러 일부러 움직인다면 수월봉을 추천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또 수월봉에 가고 싶어졌다. 주황색으로 물들던 산책로와 깊고 푸른 바다.

그리고 그날의 기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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