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승마장의 추억 한 장
덥고. 너무 덥다.
이 여름이 너무 덥다.
너무 덥다는 생각을 해서 그랬나…
이번 그림에세이는 뭘 써야 하나 하고 스케치북을 폈는데,
겨울에 찍고 겨울에 그린 겨울 그림이라 반가웠다.
승마장.
제주에 사는 덕에 상상할 수 있고, 실현할 수 있었던 승마.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 살았다면 내 평생 말을 타볼 생각은 못해봤을 텐데,
제주에 살아서 가능했던 승마의 시간들.
말 위에서 쭈구리가 되는 내 몸과 마음과는 별개로 어쨌든 말을 타고 내릴 때마다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이 생겼다.
성취감만큼 실력도 쌓이면 좋았으련만, 겁이 많아 몸이 유연해지 지를 않고 늘 긴장한 채로 말 위에 있으니 말도, 나도 고생이다.
아주 가끔은 편안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날도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말 위에서의 나는 긴장덩어리라 성취감 대신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여러 계절이 지나도 나는 초보기승자였다. 기한이 정해지면 그때는 어떻게든 해내는 타입인지라 동기부여 차원에서 생활스포츠지도사(승마)를 준비를 했다.
이론 시험은 합격했고, 다음 해까지 말만 ‘잘’ 타면 됐는데, 구보와 장애물을 시작도 못했다. 그런 게 무서운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게 나였다.
체험 승마 수준은 벗어났으나 말을 잘 타지는 못 하는 상태로 나의 승마 경험은 끝이 났다.
지인의 농담처럼 말 타고 제주공항에 마중 나갈 수 있는 실력이 될 때까지 탔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겁보라는 게 새삼스럽고 안타까웠다.
미완의 경험으로 남겨둔 승마는 좋은 추억이다.
졸아있었지만, 외승도 해봤고, 해변승마도 해봤다.
가족과 함께 말을 타고 승마를 배우는 동안 함께 나눈 이야기도 많고, 공유한 추억이 많다.
승마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승마장의 사계를 매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말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내 아이와 함께 같은 말을 쓰다듬고, 같은 말을 타고, 같은 말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탄 말을 아이도 알고, 아이가 탄 말을 아빠도 알고, 서로 말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나와 남편의 사십 대의 절반과 내 아이의 십 대의 절반에는 승마장의 추억이 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