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어린이날 -지구 위의 모든 아이들에게

by 연우맘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딸 연우가 일 년 중 기다리는 날이 딱 3일 있다.
자기 생일, 크리스마스 그리고 오늘 어린이날이다. 공식적으로 하루종일 유튜브를 볼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니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자유의 날이다.
이번에도 오늘만을 위해 공부했다. 풀리지도 않는 수학문제 답지보며 오답노트 정리하고 코앞으로 다가온 토셀시험 기출도 하루 한 회씩 풀었다.
집에는 티비도 없고 자기 핸드폰도 없으니 놀 수 있는 거라곤 책과 피아노, 해리포터 지팡이 그리고 체스판 요정도이다.
분출구를 주기 위해 mp3를 사줬는데 이마저도 가요는 안되고 영어공부하라고 팝송만 넣어줬다.
그렇다. 인정한다. 친정엄마가 가끔 전화로
"너 계모야."
연우 아빠도 가끔 내 눈치 보며,
"애좀 풀어줘. 너무 공부공부 하지 마."
유튜브가 나를 이렇게 버려놨다. 그 속에는 훌륭한 엄마, 아빠들이 너무 많다. 초등 3~4학년이 영어 원서 술술 읽고, 스스로 계획 세워 공부하는 범생이 아이들.
강남 학원가는 밤 11시 되도록 불이 안 꺼지고 그 주변 편의점에서는 간식을 입에 욱여넣으며 다음 학원으로 출동할 준비를 하는 정말 어리고 어린 학생들.
그 모습을 보면 한없이 불쌍해 보이는데 고개를 돌려 내 아이를 보면 갑자기 한심함이 물밀듯이 밀어닥친다. 화가 난다.
아이 앞에서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니 엄마는 공부 열심히 안 해서 시험도 떨어지고 기간제 하고 있다는 둥, 의대에 가서 떵떵거리고 살아라 그럼 내가 니 병원 가서 청소하겠다느니 사정, 애원, 때론 협박을 하며 공부시킬 때가 많다.
제발 공부만 잘해다오! 하루를 공부계획으로 시작해서 영어단어시험, 오답노트 정리한 거 검사하며 둘이 티격태격하다 한 명은 꼭 울고 잠이 든다.
언제까지 뒤치다꺼리해야 하나 하루는 너무 화가 나 요가학원을 덜컥 등록해 피신했다. 엄마는 요가 신나게 하고 딸은 집에서 공부를 하는지 어떤지 몰라도 잠시만 서로에게 각자만의 시간을 준다.
또 딸은 엄마를 위한답시고
"엄마 저녁 많이 먹은 거 같은데 오늘 요가 두 타임 뛰고 와! 나는 잘하고 있을게. 걱정 마!"
그래 엄마 안 들어왔으면 좋겠지? 안다, 알아!
그래도 기특해. 내 딸! 공부 잘하진 않아도 시키면 하는 척이라도 하는 네가 좋아.
4학년 때 한국사 1급 딴것도 우리 가문의 영광이야.
책도 아무거나 던져줘도 속독보다 더 빠르게 초고속으로 읽어 내려가는 너가 어쩔 땐 대단해 보여.
어떻게 밥 먹으면서 책을 볼 수 있는지 신기해. 나는 핸드폰 없으면 음식이 안 넘어가는데 말이야.
무엇보다 이렇게 시키고 잔소리하고 소리 지르고 공부얘기만 하는 엄마에게 편지도 잘 써주고 버스 타고 멀리 있는 학교 등하교도 힘들 텐데 꼭 엄마학교로 하교해서 같이 퇴근해 주는 딸.
넌 감동이야. 사랑해.
매일 딸에게 가스라이팅 한다.
"다 널 위한 거야, 의대(엄마만의 목표) 가면 니 맘대로 살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때 더 극성 엄마가 되는 건 아닌지... 아니 불 보듯 뻔한 거 같다.
펭수를 보며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듯 웃어대는 딸을 보며 난 또 내일 공부를 계획 중이다.

지구 위의 모든 부모가 자식들에게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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