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by 연우맘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2019년에 남중학교에서 처음 담임을 맡았다. 최악의 반이었다. 내가 담임이 이라서 최악인 된 건지 사춘기 중1 남학생들의 발악이었는지 사상 유례없는 반이었다. 뉴스에서 별의별 진상 교실 안 소식이 들려와도 별로 놀랍지도 않다. 내 것이 최고였으니까.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한 그 이름들의 주인공들이 그 이후로 잊을 만하면 연락이 온다.

“선생님, 저 ○○○ 이에요. 기억하시죠?”

‘얀마! 내가 너를 잊으면 아메바다.’

“지금은 어디 학교에서 일하세요? 선생님 힘들게 하는 애 있으면 저한테 말하세요. 제가 혼내줄게요.”

‘너나 잘하세요. 너 같은 애 없어요.’라고 목구멍 바깥으로 나올 말을 꿀꺽 삼키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다.

그런데 이번 해에는 같은 반이었지만 위의 위인 이름들과는 다른 차원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학생의 연락이 온건이다. 또 같은 질문으로. 제 이름 기억하냐고. 너무 착해서, 연약해서 견디다 못해 전학 간 학생이었다.

미안해서 잊고 싶었던 이름. 하지만 차마 지울 수 없는 이름. 담임으로서 끝까지 보호해주지 못하고 그렇게 보내주었다. 이름을 더 많이 불러주지 못해서 도망가버린 걸까? 이름이 유명 가수와 똑같아서 미디어에서 그 이름이 들려오면 자연스럽게 그 학생이 떠오르고 또 미안해진다. 이제 그 학생의 이름 주위에서 미안함이 맴돌지 않게 가끔은 안부의 연락을 할까 한다.

전혀 관계없는 데도 같은 이름이 들리면 그 사람이 생각나고 그때의 장면과 추억이 되살아난다. 이름이 가진 힘은 실로 대단하고 강력하다.

나는 다른 이에게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냥 투명한 이름이었으면 한다. 역할과 의무에서 회피하는 거 같아도,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이다. 드러내 놓을 자랑거리도 딱히 없는 게 사실이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조금씩 이것저것 다 잘해서 널리 널리 내 이름 ‘고성희’ 세글자 알리고 싶은 마음 백배이다. 무명이냐 유명이냐 참 선택이 어렵다.

다른 사람이 그것도 뜻밖의 이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불러주면 기분이 좋고,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모른다면 실망감이 크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나를 걸레라고 불렀다. 그때 내가 걸레를 들고 청소하고 있었다. 그땐 정말 걸레가 된 거 같았고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1반부터 7반까지 대략 170명 정도 가르치고 거기에 5학년 한 개 반을 더 가르치고, 늘봄 아이들 또 1반을 돌본다. 얼굴은 아는데 이름을 아직도 모르겠다. 많이 미안하다. 외우려면 벌써 외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 맘이 없는 거 같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미리 선전포고했다. 선생님은 이름 외우는 데 1년 걸린다. 선생님이 이름을 외우면 진짜 천재 아니면 반칙 많이 하는 학생이라고 말해줬다. 초등 2학년 학생들은 꽤 쿨하다.

“괜찮아요, 선생님.”

그리고서는 속도 없이, 자존심도 없이 교실에서 만나도 복도에서 만나건 심지어 학교 밖에서도 100m 떨어진 곳에서도 “고성희 선생님!!!”이라고 목이 터지라고 내 이름을 불러준다. 여러 학년을 가르치다 보니 학교 이쪽저쪽에서 하루에 족히 30번 이상은 교실 밖에서 내 이름이 불린다. 40년 인생에 내 이름이 이렇게 많이 불린 적이 없다. 책임감이 막중하다.

어휴 이 강아지 같은 아이들! 진짜 이름 못외워서 선생님이 너무 미안해. 오늘부터 하루에 이름 3명씩 외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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