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을 선물한 공주님>

예전 같이 일했던 선생님에게 꽃다발을 받고 기쁜 마음을 글로 씀

by 연우맘


보라색 꽃다발을 받았다. 꽃 한 송이 한 송이는 작았지만 여러 단이 있어서 풍성했고 중요한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보라색이라는 것과 결혼식 때 부케를 든 이후 처음 꽃다발을 손에 쥐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꽃을 주다니? 기쁜 감정보다 놀라움이 먼저였다. 당연히 꽃을 받을 건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고 마무리 인사를 잘하고 나와야겠다, 내가 먼저 무엇을 선물로 주고 나와야 할까 이런 생각만 했었는데 반대로 내가 받게 될 줄이야. 그것도 그녀에게서!

처음 그녀의 인상은 무서웠다. 공주님인데 숏컷트를 한 공주님, 진한 듯한 화장(사실 처음엔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해서 화장을 진하게 했는지 아니면, 마스카라가 진해서 진한 것처럼 보이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날씬한 몸매에 감히 소화할 수도 없고 돈이 있다고 해도 따라 사지도 입지도 못할 드레스를 매일매일 바꿔 입고 오셨다.

일주일에 몇 번만 공주님 사무실에 가기 때문에 많이 얘기할 기회는 없었다. 역시 공주님이라 미친 인맥이었다. 공주님과 가까이 지내야 1년의 시간이 무리 없이 흘러갈 것 같았다. 하지만 숫기가 없는 나는 그냥 멀찌감치에서 공주님을 바라봤다.

공주님은 식단과 운동에 관심이 많으셨고 일상을 털털하게 공유해 줬다. 공주님도 저렇게 사시는구나! 때로는 공감과 칭찬, 부러움의 멘트, 따봉에 쌍따봉을 연신 날리면서 공주님의 호감을 사려 노력했다. 마지막 날까지 공주님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순간 공주님이 나에게 꽃다발을 내미신 것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꽃다발을 두 손에 꼭 쥐고 나 혼자만의 사무실에 돌아와서 꽃 사진만 족히 50방, 꽃과 함께 셀카는 100방 이상 찍었다. 예쁜 꽃다발을 노메이크업의 내 얼굴이 다 죽이고 있었지만 열심히 계속 찍었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꽃다발을 들고 햇볕 쪽을 향하여 들어보기도 하고 가슴에도 품어보았다.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건 내꺼야! 내꺼라구! 11월 말이었는데 그때가 내 생일 무렵이기도 했다. 공주님은 다 알고 계셨구나. 아냐 모르셨을 거야. 그래도 좋은걸?

생각해 보니 공주님은 나에게 꽃다발만 안겨준 게 아니었다. 돈을 벌면 그중 일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쓰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공주님하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랄 것 같지만 이 보라공주님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랐고 때론 쓴소리도 하셨다. 그때부터인 건가. 내가 운동과 여행에 월급을 반 이상 쏟아붓기 시작한 게….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 누가 봐주길 바라면서 아주 작게 보랏빛 향기라는 노래를 부르며 꽃다발을 머리에 모시고 마지막 퇴근을 했다. 공주님은 아실지 모르겠다. 마지막 퇴근길을 보랏빛으로 화려하게 장식해 주신 것을. 그리고 그 꽃다발을 집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모셔두었다.

공주님은 별안간 또 연락을 주셨다. 일은 계속해야 한다고 여기 빈자리, 저기 빈자리 알려주셨다. 공주님이라 정보통이 많으시다. 그때부터 공주님과 나는 연락을 통해서 가끔가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점점 가까워졌다.

꽃다발의 보라색은 연보랏빛을 향해 바래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 하루하루는 운동하고 기타 치고 노래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무색에서 연보라 그리고 점점 보라색, 바이올렛, 자줏빛으로 짙어지고 있었다.

공주님은 4월에 또 나에게 두 번째 꽃다발을 안겨주셨다. 바로 꽃 같은 책다발을! 공주님은 현재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글쓰기를 권했다. 공주님이 시키는데 당연히 주저 않고 키보드부터 샀다.

'꽃보다 이쁜 글을 쓸 테야!'

이건 눈에는 보이지는 않는다. 글다발이 시들어 버리느냐 아니면 영원히 보랏빛 향기를 품고 자수정보다 빛날 수 있느냐는 오롯이 나에게 달려있다. 실천과 노력으로 꽃을 정원으로 만들고 싶다. 글다발이 축축 늘어질까 봐, 향기가 나지 않고 악취가 날까 봐, 너무 자라다 못해 제멋대로 방향성도 없이 자라날까 봐, 매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잘 매만져주고, 물도 주고 가끔 가위로도 다듬어 주고 있는데 공주님 마음에 들진 모르겠다.

공주님이 요즘 잠을 통 못 주무신다. 읽으면 아니 읽다가 반도 못 보고 곯아떨어질 졸린 글을 한 편 써서 올릴까 하다가 이 글을 써서 한 번이라도 입가에 미소 조금 지으시라고 지어 올린다.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공주님! 공주님은 나에게 저녁때 해가 막 지기 시작하려는 그때, 저녁이 오려는 그때 어둠을 몰아내고 그 어떤 색깔의 물감보다 화려하고 선명한 보랏빛의 하늘을 보게 해 주었어요. 해와 함께 두터운 뭉게구름이 어우러져서 보랏빛이 더 돋보이네요. 이제 곧 어둠이 올 테지만 천천히 오게 할게요. 지금은 보라색 꽃다발이 집에 없어요. 그래도 제 마음속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공주님을 간직하고 기억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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