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죽기 전에 다시 한번만 더>
영어책을 또 샀다. <빨모쌤의 라이브 영어회화>이다. 무려 친필사인본을 예약 구매했다.
유튜브에서 구독자 100만이 넘어가는 유명한 선생님이시다. 빨간 모자를 쓰고 수업하기 때문에 빨모쌤이다. 과연 이책을 공부할까? 의심과 불신이 가득했지만 사야만 할 것 같았다.
나의 영어 고군분투 정복기는 고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꽤 잘하지도 그렇다고 중위권은 아닌 중상위권 학생이었는데 유독 나의 발목을 잡는 과목이 영, 수였다. 하필 영, 수!
수업은 정말 열심히 들었다. 왜냐! 이대 나온 영어 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재밌지도 않다. 수업 중간에 농담 절대 없다. 그냥 독해만 해주신다. 그 스타일이 나와 착 맞았다. 질문 없이 수업만 죽죽 나가는 전통적인 <교사 중심 수업 방식>.
어느 날 갑자기.
“성희는 꾸준히 열심히 하니까 분명히 좋은 대학 갈 거야.” 갑자기? 독해하시다 말고 조용한 가운데 말씀해 주시는 게 아닌가!!! 우리 반 1등에게도 이런 칭찬은 안하신 대쪽 같은 이대 선생님 이셨다.
‘잉? 나를 칭찬한다고? 왜?’ 당황스러웠지만 이대 나온 선생님께 인정받아서 기분이 우쭐하고 의자 위로 두둥실 떠 오른 기분이었다. 나 이대 나온 선생님께 칭찬 들은 학생이야!
역시 칭찬은 고래도, 고성희도 춤추게 한다.
그때부터 시중에 나온 영어문제집을 닥치는 대로 사서 풀었다. 수능 결과는 뭐 좋지 않았지만….
그렇게 난 영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 임용의 험난한 길로 들어섰다. 재수, 삼수, 사수, 오수…. 하~ 장수생의 과정 동안 교사를 꿈꾸는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speaking이었다. 3차 시험은 수업 시연을 영어로 하는 거였는데 독해는 잘하지만, 영어로는 입도 뻥끗 못 하는 나는 면접관들 앞에서 어버버버 하다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걸로 기억한다.
영어 교사 되기 포기선언!
그래도 배운 게 영어뿐이라 영어학원, 학교에서 기간제를 하며 영어를 늘 가까이했다.
그렇지만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는 영어 교사가 못 되고 영어시험에서 떨어졌다는 패배감 그러니까 화장실에 들어가서 큰일을 보고 뒤처리하지 않고 나온 꺼림직한 느낌 등 영어에 굴복당한 쓰라린 상처가 가득하다.
그래서였을까, 더 이상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1급 정교사 자격증이 없으니 뭐라도 따서 내 영어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늘 시달렸다.
영어학원에서는 공포의 대상 원어민 선생님과 같이 일했다. 처음엔 인사도 어떻게 해야 미국식이지? 이런 것까지 고민했었다. 그렇데 애런의 이름을 가진 남자 미국 원어민 선생님은 내가 개떡같이 콩글리쉬로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얘기를 잘 들어줬다. 그때부터 원어민과 회화에 자신감이 붙고 그 미국인을 이용? 하려고 했다. 일부러 말을 걸어 친한 척하고 빵도 만들어줬다.
같이 일한 한국인 선생님들 중 회화를 잘하는 선생님들의 특징은 우선 쉬운 영어로 말한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여유롭게 천천히, 손짓을 원어민 그들의 동작과 비슷하게 하면서. 나는 누가 들을까 거의 귓속말 수준으로 소곤소곤 얼버무리며 잽싸게 내 뜻만 전달하고 몸을 홱 돌려 가버린다.
스피킹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 그나마 효과를 본 것은 영어 뉴스 듣기 강좌였다. speaking을 잘하고 싶은데 listening 프로그램이라서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들린다고 했다. beautiful의 스펠링만 암기하고 발음을 못 하면 암만 들려줘봤자 무슨 단어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 뉴스를 청취하고 한 문장씩 입술에서 쥐가 날 정도로 따라 했다. 1급 정교사 자격증이 없다는 열등감 때문에 토익, 영어 뉴스, 자막 없이 미드보기 등 계속 영어공부를 했다.
그래도 영어 교사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지금은 영어와는 영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희미한 영어 지식이 사라질까 두려워 토익시험을 몇 년 만에 다시 봤다. 지금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 결과는 소름이었다.
죽기 전에 다시 한번 영어를 시작하고 마무리 지어야겠다. 어떠한 방식으로 결말을 지어야 영어 교사 시험에 떨어진 후회와 미련을 떨쳐버리고 say good –bye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미국에서 한 달 살기, 토익 990점 만점 받기, 딸아이에게 못다 한 내 꿈을 대신 이루게 하기- 더 나아가 얘를 미국 대학교에 보내고 나도 거기서 살기 등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만 떠오르니 내가 영어가 망하나 보다.
주문한 책이 다음 주 수요일에 도착 예정이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죽기 전에 영어! 너란 놈을 내가 다시 한번 도전해보겠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