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나의 부장님

by 연우맘

<부장님, 나의 부장님>


“부땅님~~. 이거 한번 확인해 주세요.” 혀짧은 소리로 한껏 애교를 부리며 도움을 뻔뻔스럽게 요청한다.


“똑똑! 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말씀 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초창기에는 교장실 한번 들어가기가 무서워서 화장실에서 몇 번이나 거울을 보고 들어갔었다. 그런데 지금은 벌컥벌컥 문 열고 잘도 들어간다.

극내향인인 나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얼굴도 두꺼워지고 완전 싹싹까지는 아니어도 반가식적인 웃음 탈을 쓰고 오바액션을 한다.


처음 1년의 기간제 교사로서의 직책을 맡은 곳은 남중학교였다. 중1 담임이란 큰 타이틀과 생활안전부, 교복 담당, 축제 등의 여러 업무를 줄줄이 받았다. 담임도 담임이지만 업무란 것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교무실에 앉아서 어벙벙한 표정으로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초점 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계셨던 부장님이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셨다.


“자, 화면에 보이는 제목 하나하나들을 서류라고 생각하고 작성해서 결재를 받은 후 너의 파일에 넣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렇게 시작된 부장님의 자세한 설명, 복습 설명, 다시 또다시 이어지는 반복 강의는 학기 초부터 4월까지 계속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남학생들과 여러 가지 문제로 교무실에서 어깨 들썩이며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고, 동료 교사들과의 불협화음이 있을 때마다 힘이 되는 조언 그리고 토닥토닥 용기를 계속 보내주셨다.

담임 그것도 남학생반 담임을 처음 해보기 때문에 좋은 첫인상을 보이려고 화장이나 옷에 신경을 쓰고 생글생글 웃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나는 첫날부터 만만한 선생으로 낙인찍혔다. 겨우 1교시 들어가고 혼이 쏙 빠져 교무실에 돌아오니 부장님 말씀이,


“교사는 연예인이 아니야.”

아…. 그때부터 다시 정신줄 꽉 붙잡고 ‘그래 여기는 전쟁터다!’ 라고 마음 고쳐먹었다.


기간제 신분이기에 12월쯤에는 내년 일자리가 걱정이 스멀스멀 되기 시작했다. 아이도 아직 어리고 이번 1년을 아주 호되게 신고식을 치른 터라 조금 쉬었다가 일자리를 구할까 조언을 구했다.

“물들어 왔을 때 노 젓는 거야.”

네! 부장님, 구직활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때부터 교육청 홈페이지를 실시간마다 들어가서 기간제 자리를 찾아보고 이력서를 넣은 결과 또 다른 남중학교의 중1 담임을 1년짜리로 맡았다. 야홋!


그 이후로도 여러 부장님을 만났다. 학년 부장님들, 교무부장님, 등 다양한 연령대, 남자부장님, 여자부장님 다 만나봤지만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한분 한분 다 성품이 훌륭하셨다.

‘아! 부장님, 선생님들은 괜히 선생님이 아니구나! 우리나라 선생님들 정말 열심히 일하시는구나!’

라고 느꼈던 적이 많다. 부장님이기에 다른 선생님들보다 해야 할 일도 많고 교장, 교감 선생님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조율해야 할 업무들이 산적해 있다.


고등학교에서 만났던 부장님은 여자분이셨는데 일이 어찌나 많은지 토요일도 당연히 출근하는 거로 여기셨다. 쉬는 시간에 뭔가는 드셨지만, 점점 살이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임신 중이었던 나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부장님은 나를 더 챙겨주셨다. 수박 좋아한다고 직접 썰어 주시고 임신한 사람은 잘 먹어야 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빵을 수업 간 사이 교무실 책상 위에 올려놔 주신 적도 많다.


코로나때 딸아이가 초1 입학을 못 해서 내가 일하는 중학교에 3월 입학식부터 데리고 가야만 했다. 그때도 부장님이 선뜻 괜찮다고 교무실 한쪽에 딸아이의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지낼 수 있게 해주셨고 점심시간에는 데리고 다니면서 놀아주기도 하셨다. 덕분에 내 딸은 초등학교가 아니라 중학교부터 다니게 된 기념적인 일도 있었다. 모두 선생님들이 배려해주신 덕분이었다.


선생님! 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부장님! 이렇게 부르면 왠지 학교가 아니라 일반 회사 사원이 된 것 같다. 어느 날은 기안문이 술술 잘 써지는 날이 있고 내가 추진한 업무나 행사가 잘 마무리되어서 교장 선생님의 칭찬을 들은 날이면 뭔가 한 건 올린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삼성 같은 대기업에서 사원증 목에 걸고 서류철을 가슴에 품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니며 부장님께 상의드리고, 교장실 문턱이 닳도록 들어가고….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느낌?


지금의 학교에서는 작년보다 수업은 약간 줄었지만, 담임을 맡지 않은 대신에 업무가 상당히 늘어났다. 주변 선생님들과 부장님들이 더 걱정해주셨다.

“교장 선생님한테 가서 그냥 못하겠다고 해. 가서 울어!”

“그러다 잘리면 부장님이 책임지실 거에요?”

반 농담, 진담으로 웃으며 푸념 늘어놓고 하소연하면 잘 들어주기도 하는 나의 부장님들!

어디 부장님뿐이겠는가.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거의 99%가 다 좋으신 분들이셨다. 누가 봐도 나 선생님이라고 이마에 써 붙여놓은 것처럼 모두가 진심이시다.

학생들은 한번 쓰고 말 학습 준비물을 며칠 전부터 연구실에서 열심히 만드시고 정년이 코앞인 한 선생님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흥미진진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나도 어려워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수학을 흥미진진하게 가르치셨다.


여기 이 자리에 더 있고 싶다. 생업이 가장 중요한 이유겠지만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인생 선배님들을 더 만나고 싶다. 만약 집에만 있었다면,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좋으신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학부모님이 교장, 교감 선생님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열심히 일하시는 학교의 선생님들! 많이들 알아봐 주셨으면 한다. 못하는 것만 들춰내지 않고 선생님들의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해 주기를 바라본다.

하루살이 같은 나의 교직 생활- 그 불안하고 위태로웠던, 당장 때려치우려 마음을 수도 없이 먹었던 1년, 2년을 잘 버텨내게 해주셨고 지금 이렇게 글 쓸거리까지 주셨으니 영원히 나의 스승님들이시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부장님! 나의 부장님! 그리고 선생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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