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참 이쁘게 하는 사람>
주변에 말을 참 기분 좋게 하는 사람이 딱 3명 있다. 엄마, 아빠, 가족은 아니다.
한 분은 잠시 같이 학교에서 일했었던 선생님이다. 그 선생님은 보자마자 다른 선생님들과 다르게 내 이름을 불렀다.
“성희! 오늘도 코찍찍이네. 겨울이라 더 그렇구나.”
“우리 성희! 점심 오늘은 또 무슨 빵으로 먹었어?”
그녀라는 호칭이 왠지 어울릴 거 같은 분! 풍기는 이미지도 우아하다. 과하게 화장하는 것도 아니고 옷을 화려하게 입지도 않는다. 그녀 주변에는 사람도 많다. 그 그룹에 끼고 싶다.
얼마 전 그냥 무작정 카톡을 보내봤다.
‘선생님! 잘 지내세요? 저 예전에 같이 잠깐 일했었던 고성희에요, 기억하세요?’
다음이 그녀의 답문이다. 영원히 기억에 남을….
‘야~~!!
예전에 같이 일했던 고성희라니!!! 넌 그냥 나의 성희야~~성희인데요~~해도 안다구^^’
<<넌 그냥 나의 성희>>
이 말에 내 마음이 뭉클해졌다. 내 이름이 이렇게 특별했던가?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엄마, 아빠, 남의 편에게도.
이 말을 듣고 감동이라고 답문 했다.
돌아온 그녀의 답변
‘우리 성희 맞네! 또 감동감동ㅋㅋㅋ나의 오후를 이렇게 행복하게 해 주네. 고마워, 고마워’
그 집 아들, 딸은 이렇게 이쁘게 말하는 엄마를 둬서 얼마나 좋을까.
두 번째 이쁜 말 하는 사람은 영자씨다. 이름도 어쩜 영자! 푸근하다. 요가학원에서 같이 수련하다. 깊은 대화는 해보진 않았다. 요즘에서야 말문이 트여서 수업 전에 약간 수다하는데 그 짧은 대화 속에서도 이 사람 친해지고 싶은걸? 생각이 든다.
요가장에 들어가면
“이쁜 언니 왔어? 여기 거울 앞에 자리 비워놨어. 언니 지정석이야. 이쁜 언니 거울에 비친 모습 보면서 요가해.”
응... 응? 이쁜 언니라고? 이런 말 정말 처음 들어봐! 그다음부터는 마구마구 나의 외모에 대해 품평을 한다. 당연히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언니는 왜 이렇게 날씬해? 내 살 떼가.”
“언니, 너무 무리하지 마. 요가 좀 살살해. 그러다 병나.”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표정이다. 날 언제부터 알았다고.
먼저 사람에게 말 못 거는 나인데 이렇게 먼저 다가와서 말 걸어 주면 더해서 칭찬까지 해주면 기분 두둥실이다.
세 번째 그 남자는 저녁 6시면 나에게 이 말을 꼭 해준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바로 라디오 <세상의 모든 음악> 전기현 님이다.
목소리가 우아함 그 자체다. 피곤에 찌들어 라디오를 틀면 그의 위로와 음악이 지친 나를 보듬어 준다. 매일 듣는 <수고하셨습니다>인데도 그날그날 느낌이 다르다. 문자 참여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사연도 몇 번 읽어주셨다. 자비로우신 전기현님! 내 남편이라면 어떨까?^^
어디 말 잘하는 사람이 이 셋뿐이랴. 가식이든 진심이든 당연히 우리 가족들도 나에게 칭찬과 이름을 불러주고 걱정 위안의 말을 해준다.
그런데 감히 판단하건대 이들은 그들과 다르다.
말투가 부드럽다. 겸손하고 잘났는데 잘난 척 절대 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웃는 얼굴이다. 낯빛이 온화하다. (전기현 님 사진 꼭 검색해 보시길! 교회는 안 다니지만 꼭 예수님상이다) 주변에 사람이 많다. 인기쟁이가 되려고 막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그 주변에 좋은 사람이 모여들 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 괜찮다고 다 인정한다. 말 이쁘게 잘하는 사람은 두 손 모으고 들어준다. 착하다. 겉모습으로 착한 척하는 게 아닌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눈치 보면서 아첨하는 말을 하고 미운 말 때로는 욕도 잘하는 나는 이 세명을 따라 해보고 싶다. 그게 과연 될까?
사람의 말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지 않나. 살아온 인생과 가치관 신념이 묻어 나오는 게 말인데.
이번 생은 틀린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