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한 김밥 한 통과 엄마의 새벽

정성 한 줄, 사랑 한 줄

by 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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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아홉 시. 눈을 뜨자마자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가 출근한 동안 두 아들 먹을 김밥을 정성스레 준비했다.

두툼한 지단을 부치고, 당근채를 썰어 기름에 볶았다.
부추는 살짝 숨만 죽여 파릇하게 볶아내고, 단무지는 물기를 꼭 짰다.
어묵은 길게 잘라 간장에 볶고, 햄은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구웠다.
맛살을 길게 손질하고, 고슬고슬하게 지은 흰쌀밥은 한 김 식힌 후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맞췄다.

그렇게 꼬박 세 시간.
손끝에 정성을 쏟아 열한 줄의 김밥을 완성했다.
나는 꽁지를 조금 집어먹고, 출근길에 배고플까 봐 한 줄을 따로 챙겼다.
나머지는 아들들이 점심과 저녁을 든든히 먹으라고 큰 반찬통 두 개에 담아두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섰을 때, 식탁 위엔 김밥통이 보이지 않았다.
저녁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 싶어 발걸음을 가볍게 했는데, 기대가 산산이 무너졌다.
남편이 아무 말도 없이 김밥 한 통을 들고 시동생 집으로 가버린 것이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김밥쯤이야, 누가 먹어도 좋은 거 아니냐”라고.

맞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준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내 속이 상한 건 김밥 때문이 아니었다.
한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가져간 남편의 태도 때문이었다.



남편이 자기 물건을 아낌없이 나누는 건 괜찮다.
하지만 내가 두 아들을 위해 정성 들여 만든 것을, 내게 묻지도 않고 내어주는 건 달랐다.
남편에게 동생이 소중하듯, 나에게는 아들이 소중하다.
내 정성이 담긴 김밥은 아들들을 위한 것이지, 미안하게도 시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나는 시동생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름대로 잘 챙긴다고 생각한다.
결혼하지 않은 두 시동생을 위해 김치며 밑반찬을 준비해 보내곤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은 마음에 얹힌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남편이 곁에 있었다면, 날 선 말들이 쏟아져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남편은 옆에 없었다.
속상하고 얹힌 마음을 글로 풀어내자, 조금은 가라앉았다.


만약 곁에 친구가 있었다면 전화를 걸어 한참 하소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글로 써 내려가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이 문장으로 흘러나오며 ‘이거 괜찮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 나는 알았다.
쏟아낸 정성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때 느껴지는 허무함을.
그리고 화난 마음을 날 선 화살처럼 쏟아내지 않고 곱게 다듬어 내보낼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걸.



김밥을 준비하다 보니,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 소풍 전날로 돌아가게 되었다.

소풍날 도시락엔 언제나 김밥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혹시 엄마가 너무 바쁘시거나,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김밥 재료를 못 사시면 어쩌나…
어린 마음에 “그럼 차라리 결석해야지”라며 조바심을 냈다.

“엄마, 김밥 싸 줄 거지?”
소풍날이 가까워질수록 엄마를 따라다니며 조르곤 했다.
사실 소풍의 설렘보다, 그날 먹을 김밥이 더 기다려졌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사 남매의 소풍날을 챙기느라 잠을 줄이고 새벽마다 김밥을 싸셨다.
그 일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이제야 그 고단함 속에 깃든 사랑의 크기를 알 것 같다.

내게도 두 아들이 있지만, 나는 엄마처럼 하지 못했다.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 준 기억은 드물다.
대신 동네 김밥집에 들러 예쁜 통에 담아 보내곤 했다.

내 두 아들을 위해 새벽마다 김밥을 싸 줄 정성이 내겐 부족했던 것 같다.
나는 친정엄마께서 내게 베풀어 주셨던 그 큰 사랑을 아들들에게 주지 못했던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소풍날 새벽마다 재료를 다듬고 참기름 향 가득한 김밥을 정성스레 싸던 손길.
그건 단순한 도시락이 아니었다.
가족을 향한 온 마음이었다.

엄마는 더 큰 사랑을 품은 분이었다.
새벽 일찍 출근하는 아버지를 위해 먼저 일어나 아침상을 차려드리고,
낮에는 농사일을 도맡아 하시고 채소를 단으로 묶어 장터에 팔러 나가셨다.
피곤함은 그림자처럼 엄마를 따라다녔다.
밭에서 일하다 꾸벅꾸벅 졸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제야 알겠다.
부모가 되어 두 아들을 키우며, 그 사랑의 깊이를 조금은 헤아리게 되었다.
부모로 살아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오늘 내가 싸는 김밥 한 줄 속에도 엄마의 손길이 겹쳐진다.
엄마가 내게 물려주신 건 단순한 김밥이 아니라, 끝없는 사랑이었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 전화를 자주 못 드리지만, 오늘은 꼭 전화를 걸어야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려야겠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참 고맙고 행복해요.”




엄마와의 이야기는 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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