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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unQ Oct 09. 2020

붓이 아닌, 신체로 그림을 그리는 이건용 작가

갤러리 파헤치기 #이건용 작가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갤러리 현대와 '신체 드로잉'으로 알려진 이건용 작가입니다.


갤러리 현대는 뭐 이미 국제 갤러리, PKM, 학고재를 비롯한 삼청동의 터줏대감 갤러리로 알려져 있죠... 한국의 근대 회화부터 해외 작가의 설치 및 영상 작품들까지, 폭넓은 작품들을 다루며 관객들에게 현대미술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는데요.


이건용(b.1942) 작가와는 2016년 '이벤트-로지컬'(Event-Logical) 개인전을 계기로 연을 맺어오며, 얼마 전에 선보인 50주년 2부 전시에서는 이승택·곽덕준·박현기·이강소 등 한국의 실험 미술가들을 조명하는 그룹전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2016년 갤러리 현대에서 개최된 전시 도록과 이건용 작가



물론 이곳 외에도 페이스 갤러리나, 리안갤러리,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다양한 전시를 통해 그동안 작품을 선보여 왔지만, 얼마 전에 갤러리 현대의 전속 작가가 되셨다는 소식을 접해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곳에서 선보인 전시를 중심으로 그의 대표작 <신체 드로잉> 시리즈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이건용 작가는 한국의 개념미술과 행위예술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하지만 그의 초기작은 설치 작품 위주였다고 합니다. 사실 1973년 <신체항>이라는 대형 설치작으로 파리 비엔날레에 참여하게 된 그는, 한동안 그곳에 머물며 해외 작가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회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1973년 파리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설치작 <신체항>



여기서 그가 말한 회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사실 그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회화의 결과물 보다, 선들이 모여 공간과 형태를 이루어 가는 그 '행위' 자체가 가진 의미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만의 해답을 찾게 되죠.


바로 그 시대에 아무도 택하지 않았던, 자신의 몸을 회화 매체로 작업하기 시작한 거죠. 대표적인 예로는 1976년에 열린 '제5회 ST전에서' 선보인 <신체 드로잉> 시리즈가 있습니다.


먼저 여기서 말하는 ST는 Space & Time으로, 당시 미술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에서, 또 대부분의 학술 자료는 이전 세대의 영향을 받아 일어로 통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건용 작가는 후배 및 동료 작가들과 함께 이 집단을 만들어 일종의 스터디 모임을 자신들의 작업과 병행해 갑니다.


이를 위해 한주도 빠짐없이 매주 신문 스크랩을 해갔다고 하니, 그 학구열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1. 신체 드로잉 76-1



이건용, 신체 드로잉 76-1-78, 1978. ⓒ artist & Gallery Hyundai


이건용, 신체 드로잉 76-1-78-2, 1978. ⓒ artist & Gallery Hyundai



먼저 작가는 자신의 키와 유사한 높이의 나무판을 가져온 뒤, 그 뒤에 서고, 이어서 나무판 앞으로 손목을 움직여 선을 긋기 시작하는데요. 하지만 처음엔 자신의 키높이와 같은 나무판의 길이 때문에 그리는데 한계가 있어 상단 부분만 채우게 됩니다. 이어서 그는 까맣게 채워진 부분을 톱으로 잘라내 뒤, 동일한 자세로 선을 긋지만, 그전보다 길이가 조금 낮아지면서 손목이 아닌, 팔목까지 움직이며 나무판을 칠하게 되죠...


이러한 행위를 4번 정도 반복하면서, 나무판 맨 밑부분까지 촘촘하게 칠을 한 그는, 아래와 같이 톱질한 판들을 다시 이어 붙여 원래의 형태로 복귀시킵니다.


이후엔 같은 행위를 통해 캔버스에 아크릴로 채색하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는데요. 처음엔 그냥 나무판자에 선이 마구 그어져 있는 모습에, 이것도 작품이라 할 수 있나?라고 당황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작품의 배경을 알고 나니, 단순해 보이던 선이 또 새삼 깊이 있게 다가오지 않나요?





2. 신체 드로잉 76-2


자! 그럼 이전까지는 나무판 뒤에 서서 그렸다면, 그다음 해에 선보인 연작에선 나무판을 등지고 그리는 작업을 선보입니다. 사진을 먼저 보시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우실 텐데요...



이건용, 신체 드로잉 76-2-79, 1979. ⓒ artist & Gallery Hyundai



위와 같이, 앞을 응시하고 있는 작가는 등 진 나무판에 선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팔을 최대로 뻗어 머리와 상체 부분부터 선을 그은 뒤, 허리를 숙여 하체와 다리 사이까지 선을 매우죠. 작업을 마친 작가가 비운 자리에는 선이 절대 닿을 수 없는 자신의 신체(머리-어깨-상하체)를 제외한 드로잉만이 남게 됩니다...


마치 사람의 형상 주위로 내뿜고 있는 아우라처럼 보이는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몸이란 대상의 존재를 다시 한번 인지시키죠...





3. 신체 드로잉 76-3


사전에 종이 한 장을 준비한 그는, 이번엔 종이 중앙에 서서 옆을 바라 본채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어서 굽혀진 오른팔을 반동과 함께 위에서부터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마치 비 오는 날에 차 와이퍼가 왔다 갔다 움직이는 듯한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사진과 같은 완곡한 곡선이 생겨나는데요.



이건용, 신체드로잉 76-3 시리즈들, 1796 & 2016년. ⓒ artist & Gallery Hyunda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반대로 돌아 같은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양팔의 움직임에 의해 자연스럽게 하트 모양의 선이 종이 위에 남겨집니다. 작가는 이후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연필 대신 다양한 색감을 묻힌 아크릴로 채색한 작품들도 선보이는데, 목탄의 깔끔한 재질과는 다르게, 아크릴이 마르기 전에 아래로 흘러내리는 흔적을 그대로 표현한 작업들도 굉장히 매력 있게 다가옵니다.


또한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손을 자연스레 휘둘렀을 때, 형태는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위치에 선들이 그려지면서 어긋난 구간끼리 중첩되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요. 작가는 바로 이 어긋남, 즉 차이에 대한 중요성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다시 말해, 완벽과 엄격함을 허물고, 차이를 인정할 때 더 넓은 여지를 수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사실 당시만 해도 서양의 다양한 화풍들이 유입되면서, 작가들에게 작품이란, 한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완벽한 붓의 터치만을 담아내는 무언의 강박관념이 있었습니다. 이건용 작가는 바로 이점에 회의감을 품으면서 자신만의 <신체 드로잉>을 통해 편견을 깬 것이죠...


따라서 근대까지 이어온 선의 기준을 완전히 흔들어 놓은 그의 작품들은 보고 있자면, 그 매력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자! 오늘 제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 입니다~


오늘 함께 살펴본 이건용 작가는, 신체 드로잉 시리즈 말고도, 달팽이 걸음, 이벤트 로지컬-확장 드로잉 등의 주옥같은 행위예술 작품이 너무나도 많지만.. 한 번에 다루기엔 양이 너무 방대해서,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또 소개해드리도록 할게요!


그럼 오늘 썬큐의 포스팅이 도움되셨다면 꼭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려요;)




더 자세한 내용은 내일 연재되는 ‘한 점 하실래요?’에서 마저 전달드리겠습니다.


그럼 내일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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