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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unQ Feb 10. 2021

시오타 치하루의 연결고리

공간의 초상을 그리다. 시오타 치하루(Shiota Chiharu)

작년에 이어 창밖은 여전히 춥고, 사람들은 두꺼운 패딩을 옷장에 넣어두지 못한 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새로운 한 해라는 왠지 모를 설렘이 모든 것이 곧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을 주는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간에는 글의 힘을 빌려 코로나 블루의 기운을 조금씩 떨쳐내 보고자 해요.


오늘의 주인공은 지난여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해주었던 일본의 시오타 치하루(Shiota Chiharu)입니다.



한적한 어느 주말 오후, 문득 그녀의 전시 소식이 떠올라 마을버스를 타고 무작정 서촌을 지나 평창동 언덕을 올랐습니다. 그곳엔 그녀의 또 다른 자아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죠. 오늘 주제는 주말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엔 다소 무거울 수 있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작품이기에 오늘만큼은 평소보다 차분한 어조로 시작해보고자 해요.




일본에서 출생한 시오타 치하루의 인생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의 묘를 보고 처음으로 무언의 공포심을 느낀 그녀는, 이후 이웃집에서 일어난 화재가 후에 뼈대만 남고 타버린 피아노에서 누군가의 환청을 듣는 기묘한 일을 경험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자신의 삶 또한 순탄치는 않았는데... 일본에서 학부를 마친 후 독일 유학길에 올랐지만 그마저도 정착하지 못한 채 짧은 기간 동안 9번이나 이사를 다니는 유목민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안타깝게도 2017년에는 암이 재발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완전한 트라우마로 남게 되죠.

 

대표적으로 작년 가나아트에서 선보인 <Out of My Body>은 그녀의 투병 시절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는데, 천장에 설치된 얇은 끈에 겨우 의지하며 밑으로 힘없게 축 늘어진 붉은 가죽은 그녀가 매일 고통 속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갔던 고통을 고스란히 재연하고 있습니다.

 


생살을 칼로 도려낸 듯한,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소재의 특성을 살려 이와 같이 표현한 것이죠...

이렇게 작품의 배경을 알고 나니, 가죽을 따라 시선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녀가 겪었던 아픔이 조금씩 전해지는 듯합니다.




사실 시오타 치하루는 공간을 실로 가득 매운 대규모 설치작으로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 작가로 유명합니다. 한국에서는 작년 부산 시립미술관의 '영혼의 떨림'전과 가장 최근엔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선보인 'Between Us'전에서 볼 수 있었죠.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의자를 타고 천장까지 올라가는 붉은 실타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그녀의 정교함에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비록 이번 전시에는 코로나의 여파로 작가의 컨디션 조정을 위해 그녀의 스텝들만 자가격리를 지낸 후 한국에 들어와 이 공간을 채워갔다고 해요. 작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개인전만 해도, 작가가 자신의 기존 스텝들, 그리고 미술관 큐레이터와 함께 음악을 틀어놓고 한 차례의 퍼포먼스를 펼치듯 그 넓은 공간을 한 올 한 올 매워갔다고 하니, 정말 상상만으로도 가히 장관이었을 듯하네요.


 

아래 설치작을 살펴보면, 주로 빨강, 검정, 흰색 총 3가지 색상의 실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각각 혈관, 머리카락, 피부 등을 상징하고 있는 해당 색상들은 작가가 캔버스, 즉 회화만으로는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껴 실로 자유롭게 선을 그리기 시작하며 탄생한 작업 연작이죠. 개인적으로 공간의 초상을 그리는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위와 같은 퍼포먼스를 통해, 마침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 그 이후의 영혼이 되어 기억에 남은 존재에 대해서도 사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가나아트의 전시장에 놓여있던 의자들은 모두 새것이 아닌,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있는 의자들을 수집해 진열해둔 것이라 해요. 각 지역의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오브제를 보고 있자니, 그와 유사한 맥락을 가지며 목재를 해체하는 작업을 선보인 타다시 카와마타의 설치작품이 떠오릅니다.

 

전시장 2층에 올라가 보니, 이러한 오브제들을 투명한 철제 틀 가운데 배치해, 그 주위를 실로 감싼 작품들도 전시 중이었습니다. 열쇠, 탯줄 자르는 가위 등 생명에 관해서 고민하던 그녀에 삶과 연관된 오브제들을 배치해둔 모습에 역시 끊임없이 인간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작가의 철학이 느껴지네요.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전시장 입구에서 설치 작품을 마주할 때만 해도, 그 장엄함에 숙연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한 영혼이 되어 실타래 안에서 거닐다 작품의 끝부분에 다다랐을 땐, 마치 태아가 되어 뱃속을 부유하고 난 뒤, 왠지 모르게 치유받는 듯한 느낌을 들었어요.




이번 시간에는 특별히 그녀의 드로잉 시리즈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설치 작품을 주로 보시다가 드로잉을 보시면 소재나, 작품 사이즈에 있어 처음엔 조금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오타 치하루는 그녀의 드로잉에서 자신의 작품관을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설치작은 전시를 선보이는 기관의 커미션 작품이 많기 때문에, 아주 실험적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죠.

 

또한 그녀의 드로잉에서는 한 개인의 생명에 대한 사유를 넘어서 타인과의 관계에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 생명으로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고, 타인과 무수한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할 때, 비로소 자신만의 정체성이자 사회적 자아를 확립해갈 수 있음을 작가는 말하고 있죠.

 

아직은 불안한 희망이 오가는 가운데, 다들 불안해하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서 그녀의 드로잉 속 인물들에게 내면의 모습을 하나하나 대입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수많은 이들로 이루어진 실타래와도 같은 이러한 관계 속에서 또 다른 치유를 받기를 바라며 글을 끝맺어 봅니다.



아 그리고 참!

다들 즐거운 설 연휴 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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