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엄마의 선택

엄마가 된 앨리스

by 순심

나는 난임이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생리주기가 사춘기 때부터 불규칙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고3 때에는 일 년 동안 한두 번의 생리가 전부였지만, 내가 스트레스에 남들보다 예민한 편인가 보다고 생각하며 그러려니 했고, 되려 끔찍한 생리통과 성가신 일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예민하기는커녕, 참 많이도 무뎠다. 마음만 먹으면 아이는 금방 생기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나는 난임 판정 이후 꼬박 2년을 병원을 드나들고 나서야 첫 아이가 생겼다. 그나마도 참 운이 좋은 경우였다.


고약한 입덧, 퉁퉁 부은 다리로 지옥철을 타고 왕복 3시간의 출퇴근, 동료들의 집단 권고사직으로 인한 직장 내 스트레스.... 그 속에서 나는 녀석을 잘 지켜냈고, 녀석은 18시간의 진통 끝에 결국은 제왕절개로 세상에 태어났다. 새카만 머리를 참 예쁘게도 길러 나온 새빨간 녀석. 나는 그렇게 첫 엄마가 되었다.


젖을 물리는 것도,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얇은 화선지 같은 녀석의 손톱을 떨리는 손으로 깎아주는 모든 일들이 내게는 다 처음이었다. 나는 바짝 긴장한 엄마였고, 그러다 보니 더더욱 서툴렀다.

녀석이 세상에 태어난 지 백일쯤 되었을 때, 이제야 좀 젖이 돌아 녀석을 충분히 먹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복직일이 다가왔다. 도무지 녀석을 남의 손에 맡기고 일터로 나갈 자신이 없어 육아휴직을 신청했지만, 반려되었다. 결국 고민 끝에 나는 성과점수 A를 받던 일 잘하는 민대리를 포기했다. 오롯이 첫 엄마에 집중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나는 요즘 종종 그 선택을 떠올린다.

'정말 잘 한 선택이었을까?, 이게 정말 내 선택의 연장선일까?'

경력단절과 사회생활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 아니다.

아이의 하루하루를 온전히 눈에 담고 싶었던 마음, 아낌없이 충분한 사랑을 주고 싶었던 마음, 녀석이 나를 필요로 하는 매 순간을 곁에 있어주고 싶었던 마음.

내 선택은 그 마음들 때문이었는데, 요즘의 녀석과 나의 관계 속에서는 그 마음들이 텁텁하게 자꾸만 묻혀간다.


"치카했니? 손은 씻었어? 그게 손을 씻은 거니? 물만 묻힌 거지. 깨끗하게 다시 씻고 나와."

"책가방 잘 챙겼니? 말로만 챙겼다고 하지 말고, 꼼꼼히 좀 봐. 너 어제도 기껏 사다 준 영어 노트는 안 가져갔잖아."

"게임 좀 그만하면 안 되니? 어쩜 하루 종일 핸드폰이니? 책을 좀 봐. 책을."

"학원 숙제는 했니? 글씨 좀 똑바로 써. 내일모레 중학생이야. 맞춤법이 이게 아니잖아."


온종일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나는 뾰족하게 날이 선 감시의 눈으로 녀석을 쫓고, 녀석은 어떻게든 내 시선 밖으로 도망치고 싶어 안간힘이다. 어쩌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 위에서는 내겐 미안함이 여유가 되고, 녀석에겐 시선 밖의 숨통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그때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러니 결국, 나는 지금 이 길 위에서 또 다른 선택의 길을 만들고, 또다시 선택해야만 한다.

엄마의 선택은 정말이지 매 순간이다. 정해진 답도 없고, 뚜렷한 확신도 없다.

나는 첫 엄마.

여전히 서투를 수밖에 없는 첫 엄마인 나는 그렇게 오늘도 엄마를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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