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요
흔히들 직업을 생각할 때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을 이야기하곤 한다.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 것처럼 미래가 많다고 여겨졌던 20대에 내게 우선순위는 늘 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잘하는 것을 하겠냐, 하고 싶은 것을 하겠냐 물으면 고민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고 싶은 걸 해야 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내가 그때하고 싶은 것을 잘했냐 하면 잘 모르겠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사회에 뛰어들 때, 여전히 내게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이었다. 어리고 독기만 가득한, 자존심이 가장 중요했던 22살의 나는 정말 이 악물고 견뎌내려 노력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이렇게 힘든데,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게 얼마나 지옥 같겠냐고 이야기했었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오래 할 수 있다고 믿던 때였다.
하지만 전 직장을 선택할 때 했던 생각은 하고 싶은 일의 반대말은 하기 싫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의 반대말은 잘하는 일이다. 잘하는 일을 해야 오래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루의 24시간 중 자는 시간만큼 일하는 시간이 많기에, 나는 일하는 나로서 효능감을 얻고 싶었다. 그전까지 지나온 다양한 직장들에선 나의 효능을 제대로 찾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사실 핑계인 것 같다.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다. 그냥 나는 나 스스로를 그만큼으로 대해주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조직이 아주 작았던 비영리 스타트업을 내 의지로 나오며 다짐했던 것은 단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러 가자였다.
분야는 달라졌지만, 나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렇게 입사를 결정했고, 그래서 정말 나는 그 분야에 대해 전혀 모르고, 관심이 없었지만 잘 해낼 수 있었다. 잘 해내고 있는 걸 회사로부터 인정받으니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나 일하며 화내는 일이 없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온전하지 않은 조직에서 1년을 견뎌낸 것은 아무래도 나의 효능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효능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을 1년이 지나서야 또 멈춰 서고야 깨닫게 된다. 잘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며, 해야 하는 일이면 참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9년이라는 경력을 가지고도 나는 여전히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은 어떤 일이며,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막연히 전에 하던 일 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데,, 근데 그게 어떤 일인지 모르겠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에게서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라도 붙잡고 한숨처럼 하소연하게 된다. 그러다 그런 내가 참 별로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얼마나 더 무너져 내려봐야, 얼마나 더 멈춰봐야 나는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될까.
어린 나는 호불호가 강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예 하지 않았었다. 하기 싫은 것을 하면서 보내기에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았고, 재미있어 보이는 게 참으로 많았다. 그래서 누군가 좋고 싫음이 분명하지 않다고, 꿈이 없다고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며 '오히려 좋겠다, 이것저것 다 해보면서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겠네!'라고 생각했던 나의 안일함이 지금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은 것만 같다. 더는 하고 싶은 것도, 재미있어 보이는 것도 없는 여기에.
차라리 어릴 때 더 이것저것 경험해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안일함에 또 나를 데려다 놓는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나는 너무 오래 머문다. 과거에 너무 머무느라 현재를, 미래를 미뤄낸다. 그리고 또 과거에 머물고, 과거에 머물고..
솔직한 마음으로 글을 쏟아내다 보니, 이제는 정말 그만 나를 그만 미뤄내고, 현재의 나에게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래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위해 나를 거둬내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나는 결국 내가 잘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할 것 같다. 물론 잘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되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다면 더 이상 이제 일하는 게 재미없다는 얘기는 그만해도 될 텐데. 이제 그만 누군가를 부러워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지만 또 그 부러움이, 질투가, 승부욕이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 줄거라 믿는다. 마냥 긍정적이진 않은 감정들을 발판 삼아 나를 더 잘 알아가고 싶다. 그래서 결국 나의 효능을, 쓰임을 찾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처럼 나도 잘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되고, 그 일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어 누군가에게 도움이, 부러움이, 질투가, 승부욕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