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회생활에서 이제야 깨달은 것들
오랜만에 첫 직장에 간다. 내가 처음 일하기 시작할 땐 그곳에 가는 옵션은 시외버스밖에 없었는데, 어느새 KTX가 생겼다. 아무래도 동계올림픽의 영향이겠지. 잠을 설쳤다. 딱히 그곳에 가는 것이 설레어서 그랬다기보단 출근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음날 무언가 예정되어 있으면 요즘 잠을 설친다.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서 준비하고 청량리역에 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피곤함을 이겨보려 스타벅스에 갔다. 바리스타도 지쳐 보였다. 괜히 힘이 빠졌다.
나는 이런 모임에 가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라 보통은 빠지는 편이다. 이번엔 직전회사의 퇴사를 앞두고 소식을 들어서인지 바로 기차표를 끊었다. 왜인지 나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이게 휴식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터덜터덜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플랫폼에 왔다. 큰 생각 없이 좌석을 골랐는데 하필 제일 뒷 칸이다. 꿉꿉한 플랫폼을 씩씩하게 걸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창가를 선호하지만 목적지가 종착역이 아니기에 통로 쪽을 선택했다. 혹시나 옆자리에 사람이 올까 봐 테이블을 내리지 않고 기다렸다. 출발 직전까지 자리의 주인이 오지 않길래 가는 동안 채워지려나 싶었는데 주인이 왔다. 머쓱하게 앉아 출발 전 사온 커피와 샌드위치를 영혼 없이 먹었다.
기차가 출발하니 문득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마치 한참 어렸던 사회 초년생의 마음이 떠올랐다. 어느새 인지도 모르게 마음에 자리 잡았던 직업을 위해 대학에 진학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가고 싶었던 곳에 취업하지 못했는데 그보다 더 좋은 곳에 입사하게 되었었다. 물론 청년인턴이라 기간이 정해져 있는 계약직이었지만 동기가 10명이었다. 그중 막내는 나였고, 나와 가장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는 7살 차이였다. 동기가 많다는 것도 내가 이 조직에 발을 들였다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막내라 가장 작은 방을 배정받고 가장 먼저 일어나서 씻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꽤나 뿌듯했었다. 내게도 직장이 생겼다는 것이.
지금과는 성격이나 성향이 많이 달랐었다. 목소리가 컸고, 과장이 심했다. 그래야 관심받을 수 있고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오버해서 행동하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정말 정말 어렸다. 정말 어리기만 했다. 안 그래도 이기적인 성향이던 내가 더더욱 나밖에 몰랐던 때였다. 딱히 선배들에게 예쁨 받고 싶어 무리하지는 않았지만, 동기가 보기엔 그렇게 보였었나 보다. 언니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다. 그저 여력이 되어 일을 돕는 내게 “너는 그냥 네가 맡은 일만 하지 왜 내 밥그릇을 뺏냐”는 말을 들었었다. 언니 오빠들에게 너무 격 없이 편하게 하지 말라는 말도.
그때만 해도 나의 선이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상대가 긋는 선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알아차릴 경험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선을 넘나들었고 그런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내가 사회생활을 할 때 적당한 선을 그어두고 서로 지키도록 하는 것은 첫 직장에 성의 영향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그게 중간관리자로서 어느 정도 나의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아무튼.
처음 사회생활을 하던 첫 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첫 해에 얻은 것은 ‘저거 지금 해야 되나?’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늦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생각하면 바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그건 유지 중인데, 그래서인지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겉으로 강해 보이는 나를 타깃으로 삼은 한 선배가 꾸준히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를 본보기로 삼아 9명의 동기들에게 경고하고 싶어 했다. 늘 감당해내야 하는 건 나였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강하지 못했다. 매일 퇴근하고 숙소에서 울었다. 룸메이트 언니들에게 우는 걸 들킬 수 없어 숨죽이고 울곤 다음날 눈이 땡땡부어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나를 놀리는 또 다른 선배들에겐 애써 웃으며 전 날 또 치킨을 먹고 잤다고 했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자존심만 가득 찬 어린애였던 것 같다. 그 선배는 내가 그 조직에서 머무는 3년 내내 나를 본보기로 삼았다.. 자존심으로 잘 참아냈는데, 결국 마지막해에 그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그렇게 잘 참아두고 한 번을 더 못 견뎌낸 내가 미워서 한동안을 또 혼자서 눈물을 훔쳤더랬지. 그 후로 상사 앞에선 울지 않겠다고 엄청나게 다짐했지만, 인생이 그렇게 쉬울 리가.
동기가 많았지만,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마음을 터놓고 무언가를 솔직하게 나눌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자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 조금 더 유연한 마음과 생각을 가졌다면 조금은 더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후로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무언가를 터놓고 동기들을 대하기가 어렵다. 그때의 나를 마냥 이해해 주고 다독이기도 어렵다. 그래서 만나면 늘 막내가 되는 것 같은 경험은 즐겁지만 솔직해지긴 어려운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계속 이런 자리를 피해온 건 아닐까, 숙제처럼 느껴온 것은 아닐까 싶기도.
오늘은 그저 아이처럼 웃으며 조금은 그때의 내 모습을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때의 어리숙함을 재미있게 느끼고 싶다. 그때의 열심과 체력을 다시 가져와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