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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퍼 Jul 20. 2024

좋은 사수란 취향에 맞는 관리자일지도

결국 좋은 관리자가 되려면 팀원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공식적인 퇴사일이 지났다. 정말이지 이제는 무소속이 되었다.(괜스레 마음이 더 허전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퇴사를 결정할 때쯤 자리가 가까워 경력이 꽤 많은 옆팀 팀장님의 전화를 대신 받아주다 보니, 미안하다며 커피를 사주시겠다고 했다. 딱히 거절하지 않고 커피를 얻어 마셨다. 조용히 퇴사를 알렸다. 조직에서 1년 정도 일한 내가 가장 오래 일한 직원이었으니,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동료입장에서는 꽤나 아쉬웠을 테지. 


그리고 마지막 근무일 직전에 내 모니터 받침대를 주고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리 친한 사이라거나, 무언가 많은 걸 나누지 않았는데 쉽게 요구하는 것에서 약간의 무례함을 느꼈다. 나는 나의 선이 명확한 사람이라 더 무례하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떠나는 마당에 그깟 모니터 받침대가 뭐가 대수겠냐 싶었다. 멋쩍게 웃으며 그러겠노라 답했다. 


마지막 근무일에 모니터 받침대를 전하며 인사를 나눌까 했는데, 마침 회의로 계속 자리를 비우시길래 그냥 덩그러니 책상 위에 두고 회사를 나왔다. 성격상 아마 친한 동료였다면 메모라도 남겼을 텐데, 그마저도 굳이 떠오르지 않았던 걸 보니, 그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진 않았었나 보다. 


오늘, 갑자기 그 팀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마지막 근무일이 지난 지 2주나 된 지금에서야 굳이 그때 인사를 못했다며, 모니터 받침대 잘 사용하고 있다고. 오늘 나의 팀원이었던 동료와 점심을 먹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참 좋은 선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구태여 반가운 척하며 잘 지내시냐고 물었는데 이후로 답장은 받지 못했다. 그저 하트표시의 이모지만 받았을 뿐. (그분도 나와 그리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진 않았나 보다.)


아무튼, 6-7줄 되는 연락에서 내 마음에 남은 문장은 "오늘 젼님이랑 점심을 먹었는데, 써퍼님이 정말 좋은 사수였구나.. 느꼈어요. 그래서 잘 지내시나 뜬금없이 연락드려봅니다."였다. 


그 조직에서 팀을 관리하는 자리에 처음 올랐던 나는 내가 좋은 리더인가에 대해 참 많이도 고민했었다. 실무적으로는 본인의 할 일을 잘하는 사람일 수 있지만, 사수일 때, 작게나마 결정권이 있는 사람으로서도 할 일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고민하고, 주변에 묻곤 했다. 고민과 생각과는 다르게 결론적으로  팀도, 프로젝트도, 팀원들도 그 어느 것 하나 지켜내지 못했다. 내 역량 부족이 아닌 회사 상황에 맞는 판단으로 이루어진 결과였지만 그럼에도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때쯤, 팀원들은 프로젝트를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무언가를 깊게 고민하는데 강점이 있기보단, 문제를 해결하거나, 이해관계자와의 일들을 조율하고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는데 더 강점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팀원이 내게 그런 피드백을 한 적은 없지만 스스로 나의 리더십에 깊이가 없다고 느끼고, 함께 고민해주지 못하는 것에 갈증을 느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게 있는 것, 내가 잘하는 것보다 팀원이 원하는 것, 내게 부족한 것을 더 크게 보며 나는 좋은 리더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런 내게 현은 "써퍼, 잘하고 싶네. 잘하고 싶어 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거네."라고 얘기했었다. 나는 내가 잘하고 싶어 하는 줄도 몰랐던 터라 현의 말을 들으며 그렇네. 나 잘하고 싶어서 그렇네.라고 처음 인정했다. 그렇지만 나는 중간관리자로서, 팀을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물론 그것을 물을만한, 좋은 중간관리자는 조직에 없었다. 그래서 퇴사를 결정했다. 나는 좋은 관리자가 되고 싶은데 물을만한, 배워야 할 중간관리자가 없는 조직이라서. 


그리곤 누군가의 입에서 "써퍼님, 좋은 사수였구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 누군가에게 좋은 사수, 좋은 관리자는 취향처럼 사람마다 다른 거구나. 팀원들 중 누군가는 나를 좋은 관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내가 좋은 관리자가 되는 방법 중 하나는 나를 능력 있는 사수로, 좋은 관리자로 인식할 수 있는. 결국 나와 일하는 핏이 맞는 팀원을 알아보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좋은 관리자가 되기 위해 나는 나의 강점을 알아봐 줄 수 있고 본인의 약점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는 서로 상호 보완할 수 있는 팀원을 발견해야겠다. 나 또한 나의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팀원의 강점을 기반으로 팀빌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음 회사에서 나를 중간관리자로 채용해 주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나씩 고민을 쌓아가고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다 보면 어딘가에선 또 좋은 팀원들을 만나 함께 성장해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너무 희망회로인가)(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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