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린 처음부터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서

엄마와 딸로 만나게 된 걸 지도 몰라.

by 태림


엄마와 여행지에 오면 가장 중요한 건 일어나는 시간이다. 아무래도 평소 엄마의 기상시간은 빠르고, 나의 기상시간은 늦다. 아침을 챙겨 먹는 엄마와 더 자고 싶은 나의 간극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치앙마이에서의 약속의 시간은 7시 40분. 역시나 7시 40분이 됐고, 엄마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이제 일어나란 소리. 무겁기만 한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리며 엄마에게 묻는다. "배고파?"



대충 눈만 비비고 1층 카페로 내려간다. 오늘은 국물이 있는 식사를 받아 들었다. 같이 나오는 과일에 망고가 없는 게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용과가 맛있어서 위로가 되긴 한다. 엄마는 오늘도 빵을 드셨다. 아직 동남아의 음식이 전부 괜찮진 않은 모양이다.



오늘은 택시를 불러 신도시 쪽으로 가기로 했다. 오늘도 날씨가 좋았다. 엄마는 싱글벙글 웃으며 "아무래도 내가 날씨 요정인가 봐~"라고 한다. 약간 못마땅하지만 그러려니 하며 적당히 맞장구 쳐준다. 사실 나보단 엄마가 날씨 요정인 게 맞긴 맞을 테니까.


어제는 올드타운 쪽에만 있었던 터라 그런지, 님만해민 쪽으로 나오니 뭔가 시골에서 상경한 기분이 들었다. 도로도 넓고 횡단보도도 잘 되어 있었다. 건물들이 컸고, 뭔가 세련되어 보였다. 싱긋 웃으며 그래도 역시 올드타운에 숙소를 잡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내 감성은 역시 낡은 쪽인가 보다.



역시나 시작은 커피. 에어컨 빵빵한 안쪽에 괜찮은 자리가 없어서 테라스에 앉았다. 덥고 쨍한 날씨였지만, 큰 나무 아래에 앉으니 꽤 있을만했다. 라테아트로 유명하다는 카페였지만 우린 라테파가 아니라 둘 다 블랙커피를 마셨다. 한잔은 따뜻하게, 한잔은 차갑게. 다른 원두로. 커피가 너무 진해서 당황스러웠다. 어제 갔던 카페의 커피가 더 취향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사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주로 탑 형태의 옷을 잘 입지 않는다. 하지만 치앙마이에 오면서는 가지고 있던 온갖 탑을 다 챙겨 왔다. 엄마가 무슨 헐벗으러 치앙마이 왔냐고 놀렸지만, 한국에서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편이라 여기서라도 용기를 내어 보고 싶었다.


여행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나의 자아들이 튀어나온다. 가끔 그게 당황스럽지만, 또 나쁘지 않은 건 사실 나도 그렇게 살아 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치앙마이에서는 딱히 크게 할 일 없이 아,, 덥다,, 하면서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글을 끄적거리는 시간도 많았고,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많았다. 이상하게 엄마랑은 이야깃거리가 계속 생겨나는 것 같다. 이제는 엄마의 품을 벗어나서 그런지 엄마도 이런저런 얘기들을 곧잘 하신다. 어릴 땐 안 하던 아빠 흉을 좀 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도 얘기하고. 어쩌면 그래서 엄마에겐 나이 들수록 딸이 필요하다는 말들을 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근데 사실 나이 들어가는 딸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결국 우린 처음부터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로 만나게 된 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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