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면 좋겠어

by 태림


도저히 너무 더워서 밖을 다닐 수가 없다. 한국도 많이 더워졌던 터라 무뎌질 줄 알았는데 참으로 착각이었다. 여전히 얼마나 많은 착각과 갇힘 안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상보다 여행에서 더 잘 느낄 수 있는 건, 다른 문화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겠지. 늘 경계하면서 실자 다짐하는데 그 다짐조차도 착각인 것 같다.



우기의 끝자락의 여행이라 비가 많이 올까 걱정했는데, 그 또한 기우였다. 엄마의 첫 동남아를 축하라도 하듯 내내 날씨가 맑고 쨍했다. 더위를 피해 작은 그늘들을 따라 결국 실내로 들어간다. 쇼핑몰 안에 있으려고 치앙마이에 온 건 아니지만, 별 수 없이 에어컨에 너무나도 길들여져 버렸다. 어릴 땐 선풍기 하나로도 충분했는데. 문득 이럴 때마다 지구에게 미안해져 조용히 지구야 미안해를 외친다. 조금이라도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면 더 좋을 텐데 말이다.



더위에 약한 엄마의 컨디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오는 교통비가 아까워 돈돈 거리는 딸은 결국 엄마를 숙소에 눕히지 못한다. 차트라뮤에서 엄마가 취미생활(퀼트)을 하며 쉴 동안 나는 쇼핑몰을 혼자 구경했다. 엄마가 바느질할 동안 나는 요가를 했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놈의 400밧이 뭐라고 나는 또 돈 앞에 작아진다.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돈에 예민해졌을까.


투자도 경험이라던데, 경험을 얻으며 살고 싶은 나는 투자하는 법은 모른다. 그래서 얄궂은 경험들만 하며 자라왔고, 나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내 속상해진다. 아까운 마음보다 마냥 즐거운 마음이 먼저면 좋으련만. 언제 또 택시 타고 시원하게 여기저기 다녀보겠냐며, 언제 또 치앙마이에서 땀 뻘뻘 흘리며 요가를 해보겠냐며,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거기에 있는 게 아니냐며, 해맑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400밧 아껴서 쏨땀을 하나 더 먹었어, 땡모반을 한 잔 더 마셨어하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그거 아껴서 엄마랑 귀여운 발가락 반지를 샀다. 내내 발 밑을 내려다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요가해 볼 경험의 400밧을 아껴 나는 자꾸 웃음이 나는 반지를 엄마와 나눠꼈다. 뭐 어쩌겠나. 이렇게 자라온 게 나인 걸. 이렇게 자라게 키운 게 엄마인 걸.



나는 아빠의 기질을 많이 가지고 태어났다. 어릴 땐 외모까지 완전 아빠 붕어빵이었다. 첫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 말이 맞았다. 근데 요새는 엄마 판박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기도 하고, 엄마랑 닮은 부분이 많다고 느낀다. 손 안 대고 코 풀고 싶어 하는 거나, 발등에 불 떨어져야 움직이는 거나, 무조건 효율성부터 따지는 거나, 참는 부분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뭐 그런 것들.


생각해 보면 아빠와 엄마가 완전 반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그 둘도 비슷한 부분이 많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엄마의 성향도, 아빠의 성향도 가지고 있는 거겠지. 요즘은 그래서 내가 약간 덤벙대면서 자주 야무진 사람이 되었나? 하고 생각한다.



어릴 때 엄마는 내게 '아빠딸'이라고 했었는데, 요새는 대화하다 보면 자주 "내 딸 맞네"라고 한다. 어쩌면 그땐 엄마도 내가 아빠의 성향을 많이 닮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지금도 엄마는 엄마 스스로를 마냥 사랑하지도, 마냥 좋아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의 싫은 점을 닮기보단, 배우자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닮길 바랐던 것 같다. 물론 엄마 뜻대로 아빠의 장점만을 닮진 못했다. 그래서 엄만 자주 "지 아빠랑 아주 똑~같네 아주!"라고 했겠지. 엄마가 싫어하는 배우자의 모습도 빼다 박았을 테니. 바람대로 자라지 않은 딸을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이 들까.


나는 엄마와 비슷한 나를 보며 엄마가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 조금은 애틋이 여기고 보듬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점점 더 편안해지면 좋겠다.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엄마를 보며, 나도 나이 들면 저만큼 편해질 수 있을 거라고, 나를 사랑할 줄 알게 될 거라고 믿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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