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태되면 좀 어때?

by 태림


시원한 마야몰에서 시간을 보냈다. 치앙마이에만 판다는 드로잉 연필을 샀는데, 가격이 진짜 싸서 더 사야 되나 한참 고민하다가, 뭔지도 모르는데 뭘,, 하면서 일단 내려놓았다. 엄마도 문구류를 좋아하지만 나랑은 결이 다른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님만해민에 나온 김에 여기 마사지도 받아보자 싶어서 저녁에 예약을 해뒀다. 조금 유명한 곳들은 대부분 예약이 차 있어서 당일에라도 미리 시간을 정해 예약해 두는 게 좋다(사실 더울 때 가서 받고 싶었는데 풀부킹이라 저녁으로 밀렸다.)



뭐 먹지 한참 고민하다가 카오쏘이를 떠올렸다. 치앙마이에 오기 전 먹으면 좋고, 아님 말고 하던 메뉴였는데 근처에 마땅히 먹고 싶은 게 없어서 기본 정보도 없이 유명한 집으로 왔다.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다행스레 웨이팅은 없었다.


음식이 나왔는데,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는지 몰라서 그냥 먹고 싶은 대로 먹었다. 사실 나는 카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쉐린을 받은 집에서 먹은 카오쏘이도 취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닭꼬치(?)가 더 취향이었는데, 주문해 두고 카오쏘이를 다 먹어치울 때까지 안 나와서 “이거 주문 누락 아니냐”며 엄마랑 눈동자를 몇 번 도로록 굴렸다. 메뉴가 안 나왔다고 스탭에게 말하니 만들고 있다는 대답만 돌아오고 언제 나오는 질 몰라 전전긍긍했다. 여기서도 도통 참지 못하는 빨리빨리의 민족이랄까.


아무튼 한참 기다렸는데, 맛있어서 웃어넘겼다. 아무튼 결과가 좋으면 기쁨인가 싶기도 했다.



마사지받으러 가는 길에 엄마가 주스를 먹고 싶다고 했다. 수박주스는 점심에 마셨으니 망고를 마셔보자고 했다. 엄마는 탐탁지 않아 보였으나 딸의 결정을 존중해 줬다. 근데 수박주스보다 맛없어서 결국 불평불만을 토해내고... 자기 멋대로 결정해 놓고 엄마의 불평을 듣고 싶지 않은 딸은 다음부터 안 사준다는 말도 안 되는 성질을 부리고...(우리 여행 경비는 철저히 반땅이었다.)


아무튼 망고주스를 책임진 건 결국 엄마였다.



분위기가 올드타운이랑은 조금 다른 마사지샵이었는데, 2인실이 없다며 따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카드결제도 안된다고 했다.


아차차, 태국에서 QR결제가 아주 쏠쏠하대서 그것만 믿고 있었는데, 우리가 여행 가기 직전부터 한국계정은 잘 안된다는 후기를 봤더랬다. 실제로 가서 해보니 진짜 안됨. 그래서 결국 이중환전(달러-바트)을 했어야 했다는 후문...


아무튼, 엄마와 발은 같이 씻고 마사지는 따로 받았는데 그럭저럭이었다. 역시 첫날 마사지샵과 테라피스트님들이 짱이었다는걸 또 엄마와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사지 개운하게 받고 숙소로 돌아가려다 문득, 야시장 가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급 경로를 변경했다. 우리가 여행하던 때가 망고 철이 아니었는지, 이상하게 망고가 별로 없었다. 엄마가 치앙마이 오기 전 1일 1 망고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엄마는 망고를 볼 때마다 고양이 눈망울로 나를 쳐다봤다. 예상보다 비싼 깐망고의 가격이었지만 엄마의 눈망울을 외면하긴 역시 어렵다.



딱히 먹을만한 게 많지 않아서 애써 마사지로 풀어온 다리만 다시 혹사시켰다. 망고망 하나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세븐일레븐에서 새우딤섬을 사 왔다.


엄마와 잠들기 전, 내일은 쏨땀을 먹으러 가자고 약속했다. 원래 여행할 때 엄마는 간식을 주기적으로 드시는 편인데, 치앙마이의 주전부리는 입에 맞지 않는지 별로 안 찾는다. 경험이 부족해서 보장되지 않은 맛이라 그랬던 것 같다.


문득, 얼마나 경험만큼만 사는지 체감한다. 넓혀가고 싶으면서도 도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마주할 때마다 괴롭다. 그럴 때마다 꼭 도태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회피, 도태, 외면, 안주,,, 이런 단어들은 괜히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마도 그러면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은연중에 몸과 마음에 스며들게 한 탓이다.


이제는 “뭐, 좀 그러면 어때?”하는 경험치를 몸과 마음에 새기며 살아내고 싶다. 내가 먼저 그렇게 살고, 엄마에게도 그런 에너지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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