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씨에 엄마는 많이 지쳤던 모양이다. 조금만 자야지, 하고 눕더니 그대로 한 시간 반을 넘게 주무셨다고 한다. 엄마가 부족한 체력을 채우는 동안 나는 혼자 오후 수련을 하러 요가원에 왔다. 대부분 워크인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혹시 몰라 전 날 미리 예약해 두었다. 오늘의 요가원은 프리덤요가.
오토바이 뒤에서 내리며 낯선 이 느낌을 충분히 누렸다. 나는 한국에서도 수련 시간 전 요가원 개방시간에 맞춰 도착해 나만의 호흡을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요기니다. 그 마음 그대로 치앙마이의 요가원도 일찍 도착했다. 대부분 올드타운의 원데이 수련비는 350밧 정도였지만, 여긴 400밧이었다. 90분 수련인걸 감안하면 꽤 괜찮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원데이도 조금만 저렴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에어컨 요가에 익숙해져 있다는 걸 여실히 느꼈는데, 들어서자마자 텁텁한 공기가 느껴졌다. '덥긴 덥네'하고 생각했다. 가만히 앉아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싱가포르에서 왔다는 킴 아저씨가 들어왔다. 같이 두리번거리며 안 되는 영어로 언제 왔는지, 언제 돌아가는지, 다른 요가원은 가봤는지 듬성듬성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순간엔 늘 왜 영어공부를 절실히 하지 않는지 스스로가 미워진다. 세상을 넓혀갈 기회가 분명 있으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로 자꾸 뒤로 뒤로 멀어지는 스스로가 한심하다.
그래도 별 수 없이, 이게 나라는 걸 받아들인다. 늘 커지는 아쉬움이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을 남겨둔다. 이 요가매트 위에서까지 스스로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고 다독이면서.
타국에서 요가 수련을 하다 보면, 익숙한 단어들이 있고, 처음 듣는 단어들이 있다. 그럴 땐 눈치껏 주변을 보며 자세를 따라 한다. 더운데 에어컨이 없는 환경이라 몸이 더 잘 열렸다. 평소의 수련에서는 안되던 자세들이 잘 되는 게 느껴져서 90분 빈야사가 버겁지 않게 느껴졌다. 영어로 요가를 할 때마다 마음에 가장 많이 남는 단어들은 "exhale"과 "inhale".
삶이든 요가든 숨을 어떻게 들이마시고 내쉬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4시 30분 수련이었는데, 끝나고 나니 깜깜해졌다. 수련하는 중간 해지는 노을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게 참 낭만적이었다. 예약할 땐 애매한 시간의 수련이라고 생각했는데, 끝나고 나니 오히려 좋은 타이밍이었다.
내 수련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엄마가 요가원으로 오기로 하셨다. 숙소에서 거리가 꽤 되는 편이라, 힘들면 오토바이 잡아 타고 오라고 어떻게 하는지도 알려드렸는데, 해가 지니 선선해져 좋다며 걸어왔다고 하셨다.
엄마와 같이 걸어서 예약해 둔 마사지샵에 갔다. 생각보다 시설이 별로라서 약간 당황했다. 분명 한국분들 후기에 인생 마사지샵 이랬는데...? 60분에 350밧인 마사지였지만 만족스럽지 못해서 아쉬웠다.
근데 마사지 끝나고 망고 주길래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렸다. 엄마의 1일 1 망고 다짐을 마사지샵에서 채웠다. 하지만 엄마는 마사지샵 자체가 별로였는지, 망고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망고, 망고 노래를 부르더니 벌써 질린 걸까?
저녁 뭐 먹고 싶냐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쏨땀"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첫날 먹었던 쏨땀이 꽤 입에 맞으셨나 보다. 한국에서 태국음식점에 가도 늘 쏨땀을 얘기했던 엄마라는 걸 떠올렸다. 이렇게 맛없는걸 이돈주고 왜 먹냐고 엄마를 타박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이번 여행에서 '왜 난 엄마에겐 짜증이 쉬울까'를 가장 많이 생각했다. 그러지 말아야지, 나중에 후회할 일을 지금부터라도 줄여야지, 하고 분명 다짐하고 돌아왔는데 여전히 나는 엄마에게 짜증이 쉽다.
영어를 자꾸 미뤄두는 것처럼, 엄마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자는 다짐도 자꾸 미뤄두는 것 같다. 엄마와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걸 알면서도, 왜 그 순간들에는 떠올리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한껏 뱉는 짜증과 성질의 말 앞에 엄마는 늘 입을 옴짝달싹한다. 나는 참기 어려운 말들을 엄마는 참아낸다. 엄마가 나보다 더 어른이라 그런 걸까? 아니. 엄마가 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나는 늘 쉽고, 엄마는 늘 어렵겠지. 마음의 크기는 사람마다 달라서, 비교할 수 없겠지만. 엄마와 딸의 마음은 감히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나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걸, 사실 알고 있으면서, 그걸 감히 무기로 삼고 있으면서. 알면서 휘두르고 있는 그 무게들이 나중에 어떻게 돌아올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
엄마에게 쉬워질 때마다 나중에 돌아올 후회의 무게들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렇게 깨닫듯, 엄마도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게 하고 싶다.